시작은 H신문이었다. 828일에 올라온, ‘알고 보니 소름 돋는 사진덜 익은 삼겹살 먹었다간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특히 충격을 준 건 기사 맨 위에 실린, 한 환자의 CT 사진, 흰 쌀알처럼 보이는 것들이 양쪽 다리 전체에 퍼져 있었다. “혐오스러워요. 그만 봤으면 좋겠어요.” 더 놀라운 건 이게 삼겹살 때문이라는 것, 기사 첫 단락을 그대로 옮겨본다. “유독 삼겹살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관심있게 봐야 할 충격적인 사진이 나왔다. 미국 플로리다 대학교 샘 갈리 박사는 최근 엑스 (X·옛 트위터)에 사진 한 장을 게재했다. 갈리 박사는 해당 사진이 낭미충증이라는 기생충에 감염된 환자의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사는 낭미충증은 주로 덜 익은 돼지고기 등을 섭취해 감염된다.’고 덧붙인다. 이 정도면 삼겹살을 먹고픈 마음이 다 없어졌을 테지만, 이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는지 기사는 박사의 다음 말로 쐐기를 박는다. “낭종이 뇌에 들어가면 두통과 발작 증상이 나타나고 심할 경우 낭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할 수 있다....전 세계적으로 매년 5만 명이 낭미충증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사 말미에 국내산 돼지는 감염된 경우가 드물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이 정도로 삼겹살을 안먹겠다는 결심은 흔들리지 않을 듯하다.

진실은 기사와 다르다. 국내산 돼지는 감염된 경우가 드문 게 아니라, 감염 자체가 없다. 돼지는 사람의 변에서 나온, 갈고리촌충의 알을 먹고 낭미충에 걸린다. 삼겹살을 덜 익혀 먹으면 낭미충이 죽지 않고 사람에게 들어와 갈고리촌충이 된다. 갈고리촌충은 매일같이 수많은 알을 만든 뒤 기생충의 몸체에 담고, 사람이 변을 볼 때 몸체 일부를 외부로 내보낸다. 그런데 그 몸체가 어떤 이유로든 사람 몸안에서 터지면, 그 안에 있던 알이 부화해 낭미충이 되고, 낭미충은 뇌와 다리근육을 비롯해 몸 곳곳으로 퍼진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제주도에서 사람 변을 먹여 돼지를 키우던 때, 낭미충이 뇌로 가서 간질발작을 하는 이들이 심심치 않게 나왔다. 돼지고기를 바싹 구워먹으라는 말이 나올 법했지만, 낭미충의 위험성이 알려진 뒤부터는 돼지를 키울 때 더이상 사람 변을 먹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낭미충을 가진 돼지가 발견된 것은 1990, 그 뒤 34년이 지난 지금까지 낭미충을 가진 돼지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낭미충의 수명이 5-20년쯤 되다보니 낭미충 환자는 그 뒤에도 나왔지만, 2010년 이후에는, 외국에 걸려온 경우는 있을 수 있겠지만, 국내 돼지를 먹고 낭미충에 걸린 사람은 없다고 확신한다.

추석은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삼겹살을 먹으며 회포를 푸는 시기, 양돈업자들은 다가올 추석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 기사는 그분들의 마음에 비수를 꽂았다. 물론 기자는 먹거리의 위험성을 국민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지만, 미국의 사례를 굳이 이 시기에 가져와 보도한 것은 의도가 아무리 좋다한들,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중남미에서 건너온 돼지고기를 통해 낭미충 감염이 제법 발생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낭미충 돼지가 없는데다, 삼겹살을 수입할 때도 낭미충이 없는 국가에서만 하고 있잖은가? 하지만 다른 신문들마저 경쟁적으로 H신문의 기사를 받아쓰기하는 바람에, 최근 며칠간 인터넷에 접속했던 이들이라면 알고보니 소름돋는 사진을 보고 돼지를 안 먹을 결심을 했을 것 같다. 한국농업신문, 농어민신문 등이 국산 돼지 안심하고 드세요라는 기사를 내고 있지만, 이성보단 감성이 더 크게 작용하는 먹거리판의 룰을 생각하면 별반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 축산업자들은 고기를 못팔아서 울고, 소비자들은 소보다 싸고 맛있는 돼지를 못 먹어서 아쉬워할 텐데, 기자들은 그저 조회수만 올리면 된단 말인가? 그런데 해당 기사의 댓글을 보다 놀랐다. 단순히 미국 사례를 가져오며 삼겹살에 대한 부정적인 설명만 나열한 우리나라 기자들과 달리, 댓글의 상당수는 기자가 팩트체크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질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국산돼지는 문제 없는데 뭔 얘기를 하고픈지 모르겠네요.’ ‘언제적 얘기를 하고 있냐?’ 기자님들, 앞으로 기생충에 대해 기사 쓰실 때는 제게 전화주세요. 네티즌들보다 모르면서 먹거리에 관한 기사를 써서 업자들을 울려서야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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