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분할 불가능한 원자(atoma)로 이뤄져 있다고 말해 물리학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고대 그리스의 사상가 데모크리투스(Democritus)귀족제에서 부유하게 사는 것보단 부유하지 않더라도 자유로운 민주제에서 살겠다는 말을 남겼다. 먹고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했던 자유, 2500년 전 사람에게도 자유는 중요한 문제였다.

대체로 보수 정부에서 자유를 강조하지만, 특히 윤석열 정부에서는 자유가 유독 강조된다. 대통령 취임식에 35번이나 자유라는 단어를 외친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광복절 경축식에서는 무려 50여번이나 자유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심지어 올해 광복절 독트린이 키워드가 바로 자유 통일이었다. 윤 대통령은 어떤 의미에서 자유를 자꾸 쓰는걸까?

윤 대통령이 자유를 외치는 지점이 북한을 의식한 발언 속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 자유는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개인적 자유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북한과 같은 나라에서 존재하고 있는 전체주의는 국가라는 전체를 강조하고, 개인은 그 부속물로 취급한다. 그런데 전체주의적 국가는 고대 아테네의 플라톤(Plato)이 생각했던 이상국가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는 국가를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국가의 최종 목표(telos)의 실현이 곧 정의이며, 이를 위해 개인은 각자 맡은 사명을 다하면 된다는 이상국가론을 설파했다. 플라톤은 자유가 지배하는 정치가 민주정인데, 이 자유는 곧 방종이 되고, 무질서로 이어져 폭군정이 되어 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래서 그의 이상국가는 철인이 지배하는 전체주의적 정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의 근원에는 스승 소크라테스를 희생하게 만든 아테네 민주정에 대한 불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유기체적 국가관은 헤겔(Hegel)윤리 국가론’, ‘절대 국가론을 거쳐, 2차대전을 일으킨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의 전체주의로 이어졌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윤석열식 자유는 이런 전체주의를 막자는 것으로,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윤석열식 자유는 시장경제적 차원에서의 자유다. 윤 대통령은 올 초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참석해 자유 시장경제라는 것은 국민 모두를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이라고 밝혔다. 시장경제 앞에 굳이 자유를 붙인 것이다. 시장경제는 근대 이후 봉건제가 무너지고 부르주아가 성장하면서 하나의 권력이 되었다. 경제력있는 성안의 자유 도시(bourg) 거주자들인 이들 자본가들(bourgeoisie)은 더 많은 자유를 요구했다 18세기 고전적 자유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이들은 국가가 개인이나 시장에 개입하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했다. 이들은 소극적 자유(negative liberty)로서 타인이 나에게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하는 자유를 추구했다. 정치적으로는 제한 정부론(limited government)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존 로크(J. Locke)를 거쳐, ‘보이지 않는 손을 말한 아담 스미스(A. Smith)에서 전성기를 누린다. 이에 대해 반기를 든 사람이 존 스튜어트 밀(J. S. Mill) 같은 사상가들었다. 밀은 적극적 자유(positive liberty)를 주장했다. 소극적 자유가 정부로부터의 자유였다면, 적극적 자유는 다수로부터의 횡포를 막는 소수의 활동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고전적 자유주의와 다른 신자유주의인데, 이 신자유주의 운동은 사회주의적 흐름으로 이어진다. 생시몽(Saint-Simon)과 푸리에(Fourier)와 같은 유토피안 사회주의들의 사상이다. 이들이 만든 사회 민주주의 질서가 바로 각종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유럽식 시장경제 시스템이다. 다른 말로, 고전적 자유주의가 자본주의를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시키는 것이었다면, 공산주의는 민주주의를 위해 자본주의를 희생시키는 것어었고, 그 중간 쯤에 신자유주의인 사회 민주주의가 존재한 것이다. ‘건정재정을 키워드로 하는 윤석열식 경제적 자유는 고전적 자유주의, 시장 중심의 자유를 더 중시하는 것으로 읽힌다.

본론으로 돌아오면, 윤석열 정부는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한다. 물론, 북한 전체주의 세력에 맞서 개인적 자유주의를 강조하고,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적 통치철학을 문제삼을 일은 아니다. 강도가 달랐을 뿐 역대 우리 정부는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대체로 이런 기조를 유지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통치이념에 대한 실천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가이다. 우리나라의 언론 자유지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이유로 많은 사람들의 통신기록이 오픈되고, 대통령과 주변 인물에 대한 수사는 편파적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들만 더 많은 자유를 누리지 않는가에 대한 의심이 든다. 자유 시장경제 측면에서도 당사자들과의 대화를 전혀 하지 않은 채 의대 정원 2000명을 늘린 것, 이 증원이 누구 의견인지, 어떤 논의과정에서 나왔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관련 회의자료도 없다 하고, 근거도 불명확하다. 시중에는 이천공이란 사람이 결정하지 않았겠느냐는 우스개 소리도 나온다. 자유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가 국가의 최종 목표를 위해 무조건 따르라는 전체주의적 통치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의 입에서 자유라는 말을 줄이거나, 아니면 더 자유로운 정치 복원이 간절하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