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글자 하나로 천송이 꽃 피우다… 서예 작품에 제주의 자연 담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최초로 메타버스 전시 병행… 새로움 추구

김종건 서예작가
김종건 서예작가

[일요서울ㅣ장휘경 기자] 10·20대 청년들은 장래 직업에 대한 원대한 꿈이 있지만, 자신의 진로 설계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 확신을 얻지 못해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일요서울이 다양한 직업군의 멘토를 만나 그 직업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알아봄으로써 청년들에게 올바른 직업관을 심어주고 진로를 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번에는 ‘서예가’를 꿈꾸는 10·20 청년들을 위한 멘토로 김종건 서예작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한 후 대학원에서는 광고디자인을 전공한 김종건 서예작가는 1998년도에 캘리그라피 전문회사 필묵을 설립했다. 현재 글씨를 디자인에 접목하는 일을 시작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디자이너들에게 캘리그라피를 가르치는 아카데미 일도 병행하고 있다.

자회사 필묵이 20주년 됐을 때 ‘그동안 너의 꽃을 피웠다. 이제는 나의 꽃을 피우겠다’라는 글을 쓴 후 제주로 이주해서 작업한 지 올해 7년차가 됐다. 그리고 7년차 기념으로 얼마 전 예술의전당에서 그동안의 작업물들을 총정리해 ‘꽃:맺음’이라는 주제의 전시를 마쳤다.

김종건 서예작가의 작품
김종건 서예작가의 작품

- 서예작가로서 주로 어떤 작품을 창작하시나요.

▲서예작가라는 말을 굉장히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저는 서예과를 졸업한 후 서예 잡지사에서 기자 생활을 한 다음에 폰트회사에서 일했었어요. 그러다가 필묵을 창업한 이후로는 글씨와 관련된 일을 계속했는데, 디자이너로서 캘리그라퍼 활동을 더 많이 했었어요. 그러면서 2006년도쯤에 꽃이라는 글자 작업을 사춘기 전시를 통해서 계속했었는데요, 당시 ‘꽃’이라는 한 글자를 어떻게 작가가 다양한 글꼴로 피울 수 있을 것인가? 라고 고민하며 작업을 계속 해왔던 거 같아요. 한글의 조형성에 대한 실험 그리고 한글은 훈민정음 서체로 탄생했지만, 꽃 글자를 다양한 글꼴로 만들 수 있는 실험을 계속해왔고요. 제주도 내려가서도 ‘꽃이라는 글자 하나로 천송이꽃을 피워보자’라는 생각으로 작업하던 중에 자연스럽게 추상회화로까지 넘어갔죠.

- 일반 서예작가와 다른 작품 세계를 추구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작가님의 독특한 작품 기법은 무엇인가요.

▲전에는 문방사우를 통해서 작업하다가 꽃 글자를 다양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다양한 도구를 사용했었는데요. 다양한 질감을 내기 위해서 화선지 문방사우를 벗어나서 나무젓가락, 티슈 등등 다양한 도구로 다양한 질감을 냈어요. 그래서 다양한 꽃을 피웠는데 2023년부터는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광목천에 손으로 그리는 작업을 시작했었어요. 이번 전시는 그 아크릴 물감을 뛰어 넘어서 수성 페인트하고 흑산화철을 섞고 거기에 아크릴 물감을 섞어서 저만의 현무암 질감을 작품의 화폭에 표현해냈죠. 이번 전시 작품도 모두 손으로 작업한 22점을 전시하게 됐어요.

김종건 서예작가
김종건 서예작가

- 기존의 식상한 서예가 아닌 자연이나 물질세계에서 서예의 본질을 새롭게 탐구하시는 작가라고 들었습니다. 작가님은 서예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서예는 문자 조형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저는 한글의 새로운 조형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 서예가 예술의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방향으로 예술성을 추구해야 할까요.

▲사회는 어떤 전통적인 것을 그대로 전승시키는 것도 중요하고요. 또 전승의 개념이 아닌 전통으로서 지금 이 시대에 맞게끔 새로운 모습으로 보여줘야 해요. 어떻게 보면 법고창신의 정신이 되는 거죠. 옛법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그래서 남들이 하지 않은 오직 나만의 스타일로 문자 조형예술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 서예 분야에서 현시대의 사람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호흡하는 작가로 통하시는데, 이를 위해 어떻게 노력하시나요.

▲제가 글씨에 대해 강의할 때 이렇게 비유하는데요. 가수와 성악가를 볼 때 성악가는 전통 서예가로 비유하고 가수는 요즘 소위 말하는 캘리그라퍼라고 비유해서 얘기하죠. 저는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다 보니깐 디자인에 사용되는 캘리그라피에 대해 많이 얘기하게 돼요. 디자인의 각 물성과 특징에 맞게끔 문자를 표현해내고요. 글자를 가지고 좀 더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어요. 이렇게 저는 한글을 가지고 그림으로 표현하다 보니까 일반 대중들이 좀 더 친근감 있게 바라보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 지난 8월10일부터 25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서예와 현대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혁신적 전시, ‘꽃:맺음’을 개최하셨는데, 전시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까지 관람했는데요. “이런 전시는 처음 본다”라고 많이 얘기하더라고요. 작품부터 전시 설치까지 굉장히 새롭다고 평가했고, 작품을 손으로 작업했다는 것에 많이 놀라는 반응이었어요. 그다음에 전시 한글이 단순한 문자 조형 예술을 넘어서 그림처럼 보인다는 것에 굉장히 재미있어했고요. 설치 면에서는 하나의 휴식과 명상의 공간으로서 의자에 앉아서 편안히 바라볼 수 있도록 전시장을 기획한 것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아 기쁩니다.

- 개인전 ‘꽃:맺음’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특별히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이번 작품들에서는 제주의 자연을 담았는데요. 획 속에는 제주도에 있는 현무암의 질감을 표현했고 조형적으로는 한글이 회화로서의 가능성, 즉 한글을 그림으로 보고 느끼고 거기서 다양한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표현했으니 관람객들이 그런 걸 보고 느꼈을 거예요.

-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최초로 메타버스 전시를 병행하셨는데, 이 전시의 특징과 자랑할 만한 점은 무엇이었나요.

▲메타버스 전시는 현실과 가상이 복합된 거잖아요. 현실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 전시했었는데 가상은 어느 행성에 나만의 전시 공간이 있어서 그곳에서 똑같은 전시를 볼 수 있는 거죠. 이 전시는 앱을 다운 받으면 집에서나 사무실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24시간 늘 볼 수 있고, 또 작가와 소통도 가능해요. 제가 최초로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현실과 가상을 보여주는 전시를 했었던 거예요. 그리고 공간 디자이너와 협업을 통해서 제주도에 있는 작업실 숨 쉬는 방을 설치 예술로 표현했고, 그곳에서 글씨 쓸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보여준 거죠. 또 플로리스트가 제주의 자연을 전시장에 옮겨 놓았고 엠비언트 뮤직은 제주의 소리를 옮겨 놓아서 관람객이 영상 속에 들어가서 꽃 글자와 함께 나비가 되어 춤출 수 있도록 제작했어요. 게다가 전시장 안에서는 그윽한 먹향을 맡을 수가 있어서 ‘이번 전시는 오감을 통한 육감 만족이다’라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김종건 서예작가
​김종건 서예작가

- 마지막으로, 서예작가를 꿈꾸는 1020 청년들을 위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저도 현재의 작업이 쉽게 이뤄진 건 아니에요. 초등학교 때부터 붓을 잡고 대학에서 전공한 후 계속 글자를 가지고 작업한 것처럼 젊은 사람들도 나만의 새로움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나만의 법을 꾸준히 공부해야 해요. 그리고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잖아요. 다양한 세상에서 많은 것을 보고 많이 생각하다 보면, 새롭게 창신하는 자신만의 그날이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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