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한 달 간병비 400만 원 선… 최저 급여 두 배
영국·미국, 국가 차원의 보건·의료 체계 수립해 지원

[대한간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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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높은 간병비 부담으로 극단적인 사건이 잇따른다. 국회입법조사처 분석에 따르면 국내 간병비 지출 비용은 2025년에만 10조 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순 계산 시 한 달 400만 원가량의 간병비가 지출되는 셈이다. 현재 간병비는 산업재해 사례나 지방자치단체 지원사업 외에는 100% 비급여항목으로 부담된다. 국회는 ‘간병비 제로화’를 내걸며 정부 차원의 지원을 제도화하겠다는 입장. 보건복지부도 ‘국민 간병비 부담 경감방안’ 등을 밝히는 등 문제 해결에 나섰다.

‘대구 간병살해청년’으로 불렸던 20대 남성 A씨가 지난달 30일 가석방됐다. A씨는 2020년부터 심부뇌내출혈 등 병환으로 입원 치료를 받던 50대 아버지의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이듬해 집에서 돌봄을 시작했다. 이후 처방 약을 주지 않는 등 방치해 결국 숨지게 했다. 이와 함께 가족 간병에 지쳐 병자를 살해하는 일명 ‘간병살인’에 대한 대안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지난해 10월에는 1급 뇌병변 장애를 가진 아들을 직장까지 그만두며 40년간 돌봤으나 끝내 숨지게 한 60대가 구속됐고, 지난 1월에는 80대 아버지를 15년간 모신 50대 아들이 아버지와 자살을 선택했다.

간병살인과 같은 극단적 사건의 주된 원인으로는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꼽힌다. 간병에는 기본적으로 높은 비용이 소모되며, 치매나 퇴행성 병변 등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질병은 기약 없는 간병이 이어져 현실적 고통을 호소하게 된다. 최근에는 간병 인력을 찾이 어려운 경우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간병에 집중하는 ‘간병퇴사’도 늘고 있다.

간병비 부담 어느 정도길래?

지난 2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환자·보호자들이 간병비로 지출한 비용은 2008년 3조6000억 원에서 2018년 8조 원을 넘었고, 증가 추이를 고려하면 2025년에 연 10조 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가족간병과 유급간병(간병인 활용)을 포함한 연간 사적 간병비 규모는 2014년 5조~6조8000억 원 수준에서 2018년 6조9000~8조 원으로 매년 증가했고, 2017년 기준 입원 서비스 이용 시 유급간병인 이용자의 연간 평균 간병비는 입권 건당 평균 270만 원으로 2012년부터 연평균 11.0%씩 증가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간병비 현황에 따르면 2019년 하루 7~9만 원 선이던 간병비는 최근 12~15만 원까지 늘어났다. 단순 계산 시 간병인을 한 달 고용하면 간병비로만 월 400만 원씩 지출되는 셈이다. 이는 한 달 법적 최저임금이 두 배 수준이다.

100% 비급여 ‘간병비’, 공적 지원 정책은?

간병비는 비급여항목으로 100% 본인 부담이다. 우리나라 사회보험에서 간병에 대한 급여가 법적으로 보장되는 경우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간병급여제도다. ‘요양 중인 근로자로서 간병이 필요하다는 의학적 소견이 있는 자’ 한정이다. 이른바 ‘산재’로 근로자로서 소견을 받은 사람에게 지원되는 경우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간병비 급여화 대책의 일환으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필요한 여건을 갖춘 병동을 운영하며 적정 제공 인력 배치를 통한 팀간호체계를 통해 전문 간호 제공과 환자 안전관리 등 간병을 제공하는 입원서비스다. 

서비스에는 입원환자에 필요한 간호서비스(투약, 주사, 상담, 기본간호, 간호기록지 작성, 환자진료보조행위 등)가 포함돼 있다. 이밖에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체적으로 지방 공공의료원을 활용해 간병비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영국·미국, 정부 차원의 지원책

간병비 지원 정책과 관련한 외국 사례로는 영국, 미국이 대표적이다. 영국은 1948년 국가보건의료체계 제도를 도입하면서 영국에 거주하는 주민은 누구나 무료로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간병비도 포함된다.

다만 병원이 아닌 곳에서 돌봄을 받는 경우 일정 기준 이상의 재산을 소유하면 간병비를 지원받을 수 없다. 이어 국민의 재정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점차 공적연금의 역할이나 범위를 축소하며 민간에서 사회보장제도를 보완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미국도 기본수명의 증가, 조기사망 위험의 감소 등으로 인해 사망보장에 대한 요구보다 퇴직 간병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공적보험은 병원 입원과 의사 방문, 처방 의약품에 대한 혜택을 제공하는 메디케어와 저소득층에게 장기 간병비를 지원하는 메디케이드가 있다. 또한 간병 보험상품과 관련해 정부가 세제 혜택으로 비용을 면세 처리한다. 이를 통해 보험료 인상을 금지하는 등으로 가입을 유도하고 있다.

국회, ‘간병비 0원’ 향해 첫발 내디뎌

지난 제22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공약으로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를 약속했다. 이에 한병도 민주당 의원이 지난 19일 이와 같은 내용이 담긴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간병비 지원을 제도화하겠다는 것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건강보험의 요양급여 범위에 간병을 포함해 지원을 실시하고, 그 대상을 보건복지부에서 고시한 장기요양등급으로 정하도록 해 간병비 지출로 인한 가정의 경제적 부담이 경감될 예정이다.

한 의원은 “각 가정에서 떠안고 있는 돌봄의 짐을 국가가 나눠가질 수 있도록 개정안 통과에 힘쓰겠다”라고 밝혔다. 더불어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도 ‘간병비 제로화’를 목표로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은 “일반 국민이 감당하기에 비용이 매우 크다”라며 “이번 간병 관련 법안은 우리나라가 사회적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서도 ‘국민 간병비 부담 경감방안’을 통해 요양병원 간병 지원의 단계적 제도화를 밝혔다. 대한간호협회도 이와 관련 “양질의 간호·간병 통합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앞으로 정부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간병 환경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23일 의료계 관계자는 “전국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병상 중 10%만 간호간병통합병동으로 운영되고 있다”라며 “여전히 병동에는 환자 가족이 간병을 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간호조무사 배치 확대 등을 통해 간병 서비스 향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여전히 높은 간병비에 대한 부담 완화와 간병 서비스 향상 등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지원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정부와 국회는 정책과 법 개정 등을 통한 문제 해결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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