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동 178-1번지. 최근 정치권의 핫 이슈를 생산해 내고 있는 핫 플레이스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을 역임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던 곳으로 얼마 전 그의 3남이자 이희호 여사와의 유일한 혈육인 김홍걸 전 의원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에 대한 상속세를 내겠다며 매각한 토지의 지번이기도 하다.

중학교 때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는 김영삼과 김대중, 소위 양김씨에 관한 서적을 탐독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알게 된 것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 거주하던 상도동을 정치적 기반으로 한 야당의 계파가 상도동계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거주하던 동교동을 정치적 기반으로 한 야당의 계파가 동교동계라는 것이었다. 신군부 독재의 최전성기였던 전두환 독재 정권기의 민주화의 성지와도 같았던 곳이 바로 상도동과 동교동이었던 것이다.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80년대 거주하고 있었던 곳이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7-6번지였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시 거주하고 있었던 곳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동 178-1번지였다. 고등학교 시절 필자는 그들의 전화번호를 알고 싶었다. 전화를 걸어 볼 목적은 아니었지만, 수첩에 그들의 전화번호를 적어 가지고 다니면 뭔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양 의기양양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시는 개인 정보라는 것에 대해 지금처럼 민감한 시절은 아니었다. 관공서나 일반 기업, 영업소 이외에도 개인 주소지의 전화번호가 전화번호부라는 책으로 발간되어 누구나가 쉽게 개인의 전화번호를 알 수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전화번호는 쉽게 알아냈다. 가입자 김영삼에 상도동 주소를 대조하니 전화번호가 나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화번호도 쉽게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가입자 김대중에 동교동 주소를 대조하면 금방 나올 줄 알았는데, 도무지 나오지 않는다. 고육지책으로 이희호 여사를 가입자 명으로 찾아봤더니 동교동 주소와 일치하는 가입자가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택의 전화 가입을 부인인 이희호 여사 명의로 가입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시는 매사에 신중한 성격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보니 이희호 여사의 이름으로 전화 가입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김대중 전 대통령의 페미니스트로서의 면모가 나타난 일화였다. 대문 앞에 김대중과 이희호의 문패가 나란히 있었던 것도 그 연장선에서였다.

그런 점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동교동 사저가 이희호 여사 명의로 되어 있다가 그의 유일한 혈육인 김홍걸 전 의원에게 상속된 것 또한 우연은 아니었다. 김홍걸 전 의원에 따르면 동교동 사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 사후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상속받은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이희호 여사 명의로 되어 있던 것이었다고 한다.

그 동교동 사저를 김홍걸 전 의원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 매도했다고 하니 상당히 유감이다. 얼마나 상속세의 굴레가 그를 옥죄고 있었으면 그런 생각을 다 했을까? 서울시의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면 숨통을 틀 수는 있었을 것이었다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거주하기 위해 사저를 개축하는 바람에 그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 사저는 2017년 서울미래유산(지정번호 2017-004)으로 지정되어 잘 보존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사족으로 지난 7일 별세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남 김은철씨에 대해 비운의 황태자 운운하는 글들이 인터넷상에 난무하는데, 그는 김영삼 정부 시절 국정에 감 놔라 배 놔라했던 차남 김현철씨와는 다르게 국정에 관여하는 일은 없었다고 하니, 크게 나무라지 말고 가는 길에 명복을 빌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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