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내심 한동훈 대표를 바라지 않은 것 같으나, 이미 그에게는 한동훈 대표를 막을 힘도 능력도 없었다. 오히려 그의 존재가 한동훈 대표를 견인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한동훈 대표는 일사천리로 국민의힘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윤심으로 버티기를 시도했던 정점식 정책위원회 의장을 사퇴시키고, 김상훈 의원을 신임 정책위원회 의장으로 내정했다. 검찰에서의 서열은 국민의힘 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인으로서의 서열만 존재하는 국민의힘으로 만드는 것은 국민의힘을 명실상부한 한동훈의 국민의힘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당대표를 경쟁했던 원희룡, 나경원, 윤상현 후보는 전당대회와 함께 그 존재감마저 사라졌다. 그들이 얻은 득표율이 너무나 미미했기에 향후 당내에서 그들이 한동훈 대표의 독주체제를 막아내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당내에서 한동훈 대표의 유일한 걸림돌은 원외의 강자 홍준표 대구광역시장과 오세훈 서울특별시장 정도이다. 그들이 나설 수 있는 상황은 그들은 스스로 만들 수 없다. 한동훈 대표가 자충수를 두지 않는 한, 그들의 목소리는 그저 볼멘소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여의도 일각에서 한동훈이 2의 이준석이 될 거라는 소리가 있지만, 한동훈은 이준석처럼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한다는 측면에서는 2의 이준석이 될 가능성이 다분히 있지만, 대통령에게 난도질 당해서 쫓겨난다는 측면에서의 2의 이준석이 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대통령의 칼은 무디고 한동훈의 방패는 견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과 4개월도 지나지 않은 총선의 패장이 화려하게 당을 접수하고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한동훈이 총선 패배의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않지만, 그보다 더 큰 책임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는 당원과 국민의 믿음 때문이다.

둘째는 총선 불출마를 통해 배지에 연연하지 않음으로써 몸무게를 가볍게 한 전략의 결과다. 총선은 패했는데 자신이 배지를 달고 있었다면 한동훈 대표는 결코 실현되지 않았을 것이다.

셋째는 그가 상대해야 할 정당의 대표가 이재명이기에 우리는 한동훈으로도 충분하다는 안이함이 당내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이재명만 고꾸라트릴 수 있다면 당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다수를 형성하는 국민의힘의 현실이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비전을 어둡게 하고 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의 볼거리는 이재명 후보를 향한 김두관 후보의 파격적인 사법리스크 공격도 아니고, 김지수 후보의 진용(眞勇)을 외면하는 당심도 아니다. 이재명 후보가 90%를 넘는 득표율을 기록한다고 해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님을 지역을 돌며 확인하는 더불어민주당의 현실이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비전을 더 어둡게 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울 뿐이다.또한, 이재명 대표에게 충성을 다해 최고위원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면면을 보고 있노라면, 상대를 인정하고 홀로서기를 격려하며 우아하게 가지를 쳐내던 ‘3김 정치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김대중에게 픽업되어 정치를 배웠다는 김민석 의원은 도대체 뭘 배웠는지 이재명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하는 모습이 가련하기까지 하다. 봉도사 정봉주의 홀로서기가 처연할 정도다.

그런데 지난 대선의 패장 이재명이 더불어민주당을 완벽하게 접수하고 모든 죄를 스스로 사하겠다는 과욕을 부리는 이유는 왜일까? 그것은 오로지 윤석열 대통령의 존재 때문이다. 저렇게 못나고 무능한 대통령에게 진 것을 인정할 수 없는 그의 지지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고 그 자리를 이재명이 차지해야만 역사가 바로 선다는 오만방자함에 사로잡혀 있다. 그것이 이재명의 존재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래저래 한국 정치는 망조가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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