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사이 온열질환자 80%가량 증가… '사망자' 3배 이상 발생
국회입법조사처 “‘권고’ 수준 현행법, 실효성 떨어질 수밖에”

폭염 시기 노동자 안전 대책 촉구 집회. [박정우 기자]
폭염 시기 노동자 안전 대책 촉구 집회. [박정우 기자]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최근 집중호우와 함께 이어지는 폭염에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연평균 기온은 매년 상승해 ‘기후위기’에 실질적인 대응책이 필요한 상황. 폭염에 의한 온열질환으로 사망자 추이도 증가세다. 더불어 외부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보호 조치가 필요성도 제기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현행법상 폭염에 노출된 노동자를 보호하는 명시적 조항이 없어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다만 고용노동부는 현행 ‘권고’ 수준에서 더 나아갈 경우 사업주 입장에서 과한 조치가 될 수도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달 말부터 예측하기 어려운 국지성 집중호우와 습도 높은 폭염이 수시로 닥치고 있다. 연평균 기온도 매년 상승하고 있어 ‘기후위기’는 더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상황이다.

국립기상과학원에서 발간한 ‘한반도 100년의 기후변화’에 따르면 최근 우리나라 기온은 20세기 초보다 1.4℃ 상승했으며, 폭염 빈도와 강도가 강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열사병, 열경련 등의 증세를 보이는 온열질환자 발생도 증가 추세다.

우리나라는 폭염을 체감온도 기준으로 일 최고 기온이 33℃ 이상인 날로 정의하고 있다. 기상청에서는 일 최고 기온이 33℃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주의보를 내리고, 일 최고 기온이 35℃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경우 경보를 발령한다. 

체감온도는 기온에 습도, 바람 등의 영향이 더해져 사람이 느끼는 더위나 추위를 정량적으로 나타낸 온도다. 통상적으로 습도가 10% 증가할 때마다 체감온도가 1℃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온열질환자 가파른 증가 추세에 ‘비상등’

전국 약 500개 응급의료기관에서 운영하는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신고된 온열질환자는 총 2818명이었으며, 32명이 사망했다. 2022년 당시 온열질환자가 1564명, 사망자가 9명이었던 것을 대비하면 약 80.2% 증가한 셈이다.

온열질환 발생지는 실외 작업장이 913명 32.4%로 가장 많았다. 사람의 체온은 활동 대사량과 비례해 증가하기에 덥고 습한 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경우 온열질환 발생 위험이 증가한다.

더불어 노동자들이 입는 작업복은 대부분 습기 투과성이 낮고 단열의 특성을 가진 경우가 많아 정상적인 열 발산이 억제돼 온열질환에 더욱 취약하다. 지나치게 더운 장소에 오랫동안 머물면 열사병 즉, 우리 몸의 온도가 40℃ 이상으로 비정상적 상승하게 된다. 

온도 상승으로 인한 열사병은 발생 직전 두통, 어지러움, 구역질, 경련 등의 증상을 보인다. 이어 점차 의식이 저하되는데 이때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못할 경우 사망률이 80% 이상으로 높아진다. 

환자가 이 같은 증상을 호소할 경우 즉각 119에 신고하고 최대한 빨리 체온을 내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체온 감소를 위해서는 증발 현상을 유발하는 것이 효과적인데 의복을 제거하고 피부에 물을 뿌리거나 겨드랑이 부분에 아이스팩을 붙여 주는 것이 좋다.

고용노동부 폭염 특별 대응기간 설정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2일 6~8월을 ‘폭염 및 호우·태풍 특별 대응기간’으로 설정하고 대응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에 지난 8일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서울 중구의 한 근린생활시설 신축 현장을 방문해 관리 실태를 점검했다.

특별 대응기간을 맞이해 노동부가 마련한 폭염 대책은 ‘사업장 자체 폭염 예방 대책 수립 지원’, ‘폭염 취약 사업장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신속한 상황 전파’, ‘폭염 취약 업종·직종 중심 기술 및 재정 지원’ 등이다.

건설 부문에서는 공사비 20억 원 이상 건설 현장과 도로 포장·타설 작업 등 폭염에 취약한 곳들이 취약 사업장으로 선정됐다. 이와 더불어 노동부는 지난달 초부터 건설업 점검을 강화했다.

지난 5월22일과 지난달 3일, 26일에는 각각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 등 안전 수칙들을 배포해 각 사업장에서 대비·대응에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국회입법조사처 “현행법, 근로자 보호 실효성 떨어져”

지난달 28일 국회입법조사처는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영향분석’에서 현행법상 폭염에 노출된 노동자를 보호하는 명시적 법률 규정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현행법에 근거한 예방 조치 규정으로는 폭염에 노출된 노동자를 보호하는데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은 사업주는 노동자가 고열·다습 작업을 하거나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작업하는 경우 적절하게 휴식을 취하도록 하고,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 또는 그늘진 장소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권고수준에 그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지난 11일 조사처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현재 현행법을 보완하는 법안들이 제21대 국회에 상정됐으나, 본격적인 의결은 되지 못했다”라며 “현행법은 명시적으로 작업 중지 여건과 관련해 기후 여건이 포함돼 있지 않아 노동자 보호에 실효적이지 못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용노동부는 충분히 실효성이 있다고 주장한다”라며 “현행법 개정안에 대해 과도하다는 명백한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라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는 이미 현행법상 휴게시설 설치 의무화 제도가 시행돼 폭염 시기 노동자가 적절한 온도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폭염 등 기후 여건에 따른 보호조치가 이미 규정돼 있는 사항을 토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많은 노동자들이 현행법 개정을 염원하는 가운데, 현장 노동자들이 올해 닥칠 폭염으로부터 안전을 보호받을 수 있을지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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