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10명 중 8명 만성질병 있어… 영양관리 필수로 요구돼
식사 문제 해결 위해 자발적으로 요양병원 입소하는 상황
‘경로당 식사 제공 정책’ 도시, 농촌 지역 및 지자체 격차 발생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 다양한 인프라 활용해 노인 지원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노인분들. [뉴시스]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노인분들. [뉴시스]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정부가 전국 경로당에 주 5일 식사 제공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높은 노인 빈곤율과 독거노인 증가세를 고려할 때 필수적인 정책이다. 하지만 국회입법조사처는 더욱 세심한 정책 수립이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우선 도시, 농촌 지역 간 경로당 활용률이 다르고, 지자체별 예산이 상이해 식사 제공에 ‘지역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복지부는 단계적으로 정책을 보완 및 확장하겠다는 입장. 미국, 일본 등의 경우 다양한 지역거점 인프라를 활용해 노인을 지원하고 있다. 일각에서 지역별 특색에 맞는 정책 집행을 요구하는 이유다.

지난달 1일 정부는 전국 경로당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협업으로 주 5일 식사 제공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제22대 총선에서도 주요 정당들은 경로당 식사 제공 등의 공약을 발표했다. 

높은 노인 빈곤율과 독거노인 증가세를 고려할 때 노인 대상 식사 지원 확대는 불가피한 측면이라는 게 골자다. 초고령사회에서 노인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며 지역사회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하면 과도한 의료·요양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전체 노인 84%, 1개 이상 만성질병 있어

‘2020년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노인의 84%가 1개 이상의 만성질병이 있다고 응답했다. 만성질병을 2개 이상 지닌 ‘복합 이환자’의 경우 54.9%에 달했다. 만성질병 치료와 관리를 위해서는 영양관리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하지만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는 65세 이상 노인 중 남자 4.4%, 여자 5.5%가 식품불안정(안전한 식품 이용가능성이 안정적이지 않거나, 식품 구매 능력이 제한되는 경우)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1인 노인 가구에서 그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혼자 식사를 하는 노인은 불안 및 우울 증상이 상대적으로 높으며, 식품불안정성은 우울증을 유발하는 요소로 꼽힌다. 이에 정부의 ‘경로당’을 통한 식사 제공은 노인에게 정서적·사회적 교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또한 독거노인에 대한 식사배달 사업은 홀로 사는 노인의 안부를 확인하고 고독사를 예방하기도 한다. OECD 국가 노인자살률 1위인 우리나라에서 노인의 정신건강은 중요한 과제로 꼽혀왔다.

식사 문제 해결 위해 요양원 자발적 입소

지역사회 거주가 가능하지만, 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요양병원에 입소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노인을 위한 주거시설에서의 유로서비스 이용 욕구 조사’에서는 요양병원에서 적극적 이용 의사가 있는 서비스로 ‘식사’가 의료, 돌봄에 이어 3번째를 차지하기도 했다.

지난 4월 기준 전국 경로당 수는 총 6만8658개소이며, 그중 85.3%인 5만8558개소에서 주 7일 중 평균 3.4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정부는 경로당 운영을 활성화하고자 법제화 초기부터 난방연료비와 운영비를 지원해 왔다.

하지만 2005년 사회복지사업의 지방 이양 이후 양곡비 및 냉·난방비에 한정해 국비를 지원하게 됐다. 이어 기타 운영비 지원은 각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로 보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국 경로당에 지원되는 예산은 국고보조금 763억 원, 지방비 1532억 원이다. 

정부의 경로당 식사 지원 확대는 경로당별 양곡을 연간 8포에서 12포로 늘려 지원하고, 밑반찬 구입 등 부식비는 지방비에서 증액 지원하도록 할 예정이다. 양곡 추가 지원에는 국비 38억 원이 추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지방비로 지원되는 경로당 운영비는 공공요금, 부식비 등으로 사용처가 정해져 있으며, 지방자치단체별로 지원금액이 다르다. 국회입법조사처 ‘초고령사회 노인 대상 식사 지원 현황 및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 인구 대비 경로당 수와 지방비 지원 금액 수준을 고려해 볼 때 전남, 전북, 충남, 충북, 경북 등 농촌 지역의 경우 경로당이 주요한 노인복지시설로 기능하면서도 지원 수준이 열악하다고 밝혔다.

국회입법조사처, 식사 제공 정책 개선점 제언

조사처는 지역사회 근거리 경로당을 활용한 식사 제공은 노인에게 식사뿐만 아니라 사회적 교류의 기회를 자연스럽게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회원 등록을 전제로 운영되기에 다소 폐쇄적 공간이라는 단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도시 지역의 경우 경로당이 공동생활공간처럼 운영되는 농어촌지역과 달라 경로당 이용률이 상대적으로 저조하다. 이에 조사처는 개방적 운영을 통해 활용도를 제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식사의 질적 측면에서 지방자치단체별 부식비 등 지원 수준에 격차가 있어, 급식 지원 인력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노인들끼리 식사 준비를 자율적으로 계획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노인 맞춤형 영양식이 제공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특히 식당이나 시장 등 식품 관련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접근이 어려운 농촌 지역에서는 경로당 식사를 통한 영양 공급의 중요성이 더 높지만, 급식 지원 인력 구인 또한 쉽지 않아 이른바 ‘80대 노인 밥 당번’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에 조사처는 우선 지역 간 형평성을 담보한 수준의 식사가 제공될 수 있도록 국비 지원의 필요성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정부는 양곡 및 냉·낭반비의 집행 잔액을 부식비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보조금 관련 규정을 개선할 계획이지만, 이미 지난해 국비 집행률 잠정치가 92.2%에 이르는 상황이다. 이에 노인들이 부식비 마련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까지 절감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때문에, 지역 공동급식소를 활용한 전문적 음식 조리·배달, 이동식 급식소 운영, 지역 식당·가게와의 연계를 통한 배식 등 음식 준비 관련 다양한 보완책을 마련해 식사의 질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선심’ 아닌 초고령사회 대비한 ‘투자’ 돼야 한다

조사처는 “노년기에 영양을 갖춘 식사가 가져다주는 신체적·정신적 이점을 고려할 때, 노인 대상 식사 지원이 ‘선심성 공약’이면 안 된다”라며 “초고령사회에서도 가급적 많은 노인이 건강을 유지하며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끔 하는 투자라는 인식 전환이 요청된다”라고 제언했다.

이어 “소득 기준이 아닌 실질적인 식사 도움 필요 여부를 기준으로 실비 이용자까지 식사 지원 서비스의 대상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라며 “노인 인구 증가세를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는 도시의 경우 공동주택 커뮤니티 센터나 지역 식당 등의 인프라를 다양하게 활용하고, 농촌의 경우 공동급식이나 식재료 제공, 장보기 대행 등 지역 맞춤형 서비스를 개발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복지부 “식사 제공 단계적 확대할 것”

보건복지부는 조사처의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지난 20일 복지부 관계자는 첫째, ‘도시 지역 경로당 이용률 저조’와 관련해 경로당을 대신해서 갈 수 있는 대체 시설들의 접근성이 더 좋기에 그렇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관계자는 “도심지가 상대적으로 경로당 이용률이 낮은 것은 대신해서 갈 수 있는 복지관 등 대체 시설들의 접근성이 더 좋기 때문이다”라며 “종합복지관, 노인복지관이나 무료 급식소 등 경로당을 대신할 수 있는 가용 자원들이 더 있기에 그럴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둘째, ‘농어촌 지역의 원활한 식사 제공 유무’와 관련해서는 공익형 노인 일자리 확대로 중식도우미 형태의 일자리 인력들이 경로당별로 투입될 예정이기에, 식사 마련의 어려움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관계자는 “지자체 의견을 들어보면 농번기와 농한기 때 많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라며 “농사일로 바쁠 때는 경로당으로 돌아와서 식사하기 어려울 수 있다. 주로 농업 현장에서 식사를 많이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농촌 지역의 식재료 구입이나 식사 준비 문제는 아무래도 가까운 거리에 구입처가 있는 도시 지역보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이는 지역 유형별, 시설별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라며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공익형 노인 일자리 확대로 중식도우미가 경로당에 투입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재정 여건에 따른 지역격차 문제는?

‘지자체별 재정 여건에 따른 식사 제공 지역격차 문제’에 대해서는 “경로당 규모나 이용 패턴 등이 다 상이할 수밖에 없다”라며 “경로당 자체가 (법적으로) 지방으로 이양된 사업이기에 운영비 자체는 지방비로 지원이 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여름이나 겨울에 질환에 취약해지지 않도록 냉·난방비와 식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양곡비를 복지부가 국고 지자체 매칭으로 지원하는 것”이라며 “양곡비도 지자체와 협의해 단계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지자체 재정 여건에 따라 지역격차가 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어르신들이 직접 해 드시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중식도우미 등 인력을 지원하고, 부식비 같은 부분은 지자체 재정 여건에 맞춰서 계속 확대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부연했다.

미국의 ‘가정배달 영양서비스’ 제공

미국의 경우 노인복지법에 따라 6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가정배달 영양서비스를 제공한다. 저소득, 소수자, 농촌 거주 노인 등을 우선 대상으로 하며 제공되는 모든 식사는 영양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2018년 가정배달 영양서비스는 89만2000명에게 제공됐다. 또 미국 각 주에서는 다양한 식사 지원 프로그램이 제공되는데, 뉴욕주에서는 저소득 노인을 대상으로 지역 생산 신선식품 구입 쿠폰을 제공하며, 시장에 갈 수 있는 무료 버스 운행이 이뤄진다.

시카고시는 60세 이상 노인들이 무료로 과일, 야채 및 단백질 공급원을 가져갈 수 있는 ‘Nourish Chicago Pantry’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 영국, 독일 등 참여·능동적 서비스 제공

일본의 경우 보험에 기반을 두고 서비스를 지원한다. 소득 수준에 따라 자부담이 있으며 지역포괄지원센터 혹은 재가개호지원사업소가 거점이 돼 독거노인이나 노인세대에 대해 ‘생활지원형 배식서비스’와 ‘식사자립지원사업’이 운영된다.

또 사회적 기업이 지역 내 작은 매장을 설치해 저렴한 비용으로 식사배달, 식당 운영, 고령자 맞춤형 식재료를 판매하기도 한다. 

그밖에 영국, 독일 등 주요국 모두 소득이 아닌 필요를 기준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되 소득 수준에 따라 이용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 거동이 가능한 노인에 대해서는 회합 식사나 음식물 구매 지원 등 참여적·능동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도 경로당을 활용한 식사 제공에서 소외되는 노인들을 위해 다양한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 일각에서 주변 인프라를 다양하게 활용하고, 지역별 특색에 맞춰 정책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