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26일 서울 영등포 경찰서 민원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교사라고 밝힌 남성은 “자꾸 싸우면 사제 폭탄으로 국회를 폭파해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당시 집권당인 한나라당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단독으로 외교통상위원회(외통위)에 상정하고 비준 절차를 시작하자, FTA를 반대하던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 및 당직자들이 공사장 해머, 전기톱, 빠루 등을 휘둘러 잠겨진 외통위 문을 부수고 회의장 진입을 시도하는 난동을 벌였다. 또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나섰다. 조폭들의 패싸움을 방불케 한 난동을 지켜본 그 남성은 “국회를 폭파하겠다”고 협박하기에 이른 것이다. 

요즘 국회가 여야 싸움만 벌이는 추태를 보면서 “국회를 폭파해 버리겠다”던 16년 전 협박전화가 떠올랐다. 오늘날에도 국회는 여야가 변함없이 싸움질만 한다. 국회 절대과반수를 점유한 민주당은 농림축산식품 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본회의에 직 회부하기 위해 5개 법안들을 설명도 없이 단독으로 20분 만에 처리해 버렸다. 2008년 한나라당의 단독 FTA 법안 처리를 저지키 위해 해머 등으로 외통위 회의장 문을 부수고 진입하려 했던 바로 그 민주당이 이젠 5개 법안들을 법안 설명도 없이 단독 처리해 버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민주당은 예산권이 행정부에 있는데도 다수결 힘만 믿고 행정권마저 행사할 기세다. 그에 맞서 윤석열 대통령은 입법 독주라며 야당의 단독 강행 법안들을 비토 했다. 14차례나 비토권을 행사했다. 국민의 힘은 민주당이 “입법 독주 할 땐 대통령으로선 거부권 행사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는가 하면, “거부해야 할 법이라면 천 번 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며 맞섰다. 여야가 극단적 대결로 치닫는다. 또한 민주당은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 이화영 술자리 회유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정치검찰 조작수사 특검법 등을 5월 30일 22대 국회 개원 직 후 발의하겠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은 연일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며 외친다. 

국회의 기본 역할은 법을 만드는 데 있다. 그러나 국회는 특검법이나 정적을 작살내는 탄핵 등을 외쳐대는데 열을 올릴 따름이다. 국회가 법을 만드는 기구가 아니라 탄핵과 특검 전담 기관으로 착각케 한다. 21대 국회는 5월29일 자정으로 종료되는 순간까지 정쟁에 묶여 민생법안들은 뒷전으로 미뤘다. 민주당은 5월28일 민주유공자법 등 5건을 강행 처리했고 윤 대통령은 다음 날 이 법안들에 대해 비토권을 행사했다. 결국 여야는 격렬한 대결로 국민연금 개혁안,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 인공지능(AI) 기본법, 모성보호 3법 등 주요 민생법안 처리는 미뤘다.

국회법 24조에 따르면 의원은 임기 초 선서를 하게 되었다. 이 선서에서 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오늘의 국회의원들은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지 않고 당리당략만을 ‘우선’으로 하며 ‘양심에 따라 (직무를) 성실히 수행’ 하는 게 아니라 당심(黨心)에 따리 ‘양심’을 버리고 막간다. 민주당은 앞서 지적한 대로 5개 법안들을 본회의에 직회부하기 위해 법안 설명도 없이 20분 만에 단독 처리했는가 하면, 민생법안들을 뒷전으로 돌려 버렸다. 

이런 국회는 국민의 혈세만 축낼 뿐 ‘국가이익’을 해친다. 여기에 16년 전 “자꾸 싸우면 국회를 폭파해 버리겠다”던 전화협박을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폭력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면서도 국회의원들은 그가 오죽했으면 국회 폭파를 협박했는가 되씹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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