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 첫 의장 선출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소속 후보들이 의장 역할을 민주당의 당심(黨心)을 관철시키는 것이라고 공언했다. 국회 의장으로 당선되면 당적을 가질 수 없다고 명시한 국회법 20조와 오래된 정치 관행에 어긋난다. 그런데도 추미애 의원은 “민주당의 개혁 법안 처리에 도움을 주는 의장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지만 중립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의장직은 “중립”을 지키는 게 아니라 “민주당의 개혁 법안 처리”를 관철시켜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런가하면 조정식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민주당 출신 의장이 “민주당 편을 제대로 들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었다”며 “총선 민심”을 “관철하는 게 의장의 역할”이라고 했다. 국회의장이 되면 총선에서 승리한 민주당 편에 “제대로” 서겠다는 다짐이었다.  

추•조 의장 후보들은 당심이 아니라 “역사의 올바른 편”에 “제대로” 서겠고 다짐했어야 옳다. 마이크 존슨 미국 연방 하원 의장이 공화당 소속이면서도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기 위해 공화당 편에 서지 않고 민주당 편에 섰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 하원은 존슨 의장의 독려로 지난 4월21일 608억 달러(84조 원)의 우크라이나 지원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동안 공화당은 이 지원 법안을 극구 반대했다. 특히 강경파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는 격렬했다. 뿐 아니라 그들은 작년 10월 공화당 출신의 케빈 매카시 하원 의장을 해임하는데 앞장섰던 인물들이다.

공화당 강경파는 지난해 매카시 의장 해임 사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매카시 의장이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의 정부 부채한도 설정에 합의해 주었고, 다른 하나는 ‘연방정부의 셧다운(연방지출 중단)’을 피하기 위해 민주당과 연대해 임시 예산안을 처리해 줌으로써 “민주당과 야합” 했다는 것이었다. 하원의장 해임은 미 의회 234년 역사상 최초의 이변이었다.

  지금의 존슨 의장은 매카시 의장 해임 후 공화당의 지지로 선출되었다. 그래서 그는 공화당 편에 “제대로” 설 것으로 예상됐었다. 더욱이 그는 민주당의 우크라이나 지원 법안을 통과시켜 줄 경우 6개월 전 매카시 의장처럼 자기도 공화당 강경파에 의해 “민주당과 야합” 했다며 해임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우크라이나 지원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가 의장직을 걸고 이 법안을 채택한 것은 이기적인 개인 정치나 의장 자리에 연연하기보다는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기 위해서였다.

뉴욕타임스 국제판 4월23일 자 보도에 의하면, 존슨 의장은 “역사는 우리가 하는 일에 판단을 내린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어 “나 자신만을 위해 이기적인 결정을 내렸다면 다르게 대응할 수 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옳다고 믿는 일을 해냈다”며 “치명적인 우크라이나 지원은 지금 결정해야 할 때”라고 했다. 그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해 낸 건 심오한 역사의식에 기반 했다. 그는 마이클 매콜 하원 외교위 위원장에게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기를 원 한다”고 토로한 바 있다고 한다. 존슨 의장은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기 위해 의장직을 걸고 공화당 소속이면서도 민주당 편에 선 것이다.  

당심 보다는 역사의 판단을 중시하는 존슨 의장의 역사의식을 접하며 눈앞의 의장 자리만  탐내는 추•조 의원의 이기적 개인 정치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의원들은 민주당 강경파 그룹의 지지를 얻어 의장직을 꾀 차기 위해 국회법과 오래된 정치관행 마저 어겨가며 “제대로” 민주당 편에 서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존슨 의장처럼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기”위해 의장직 해임도 두려워하지 않는 역사의식을 품어야 한다. 두 의원뿐 아니라 모든 의원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역사가 준엄한 판단을 내린다”는 사실을 직시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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