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엘 법무법인 박지양 변호사]
[로엘 법무법인 박지양 변호사]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규정들이 전면 폐지된 지 10년이 넘었다. 친고죄 규정의 폐해가부단히 지적되면서 성범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범죄들 또한 더 이상 친고죄가 아니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성범죄와 관련하여 많이 받는 문의 중 하나가 “피해자와 합의하면 끝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한다 한들 수사와 기소, 공판의 진행과 선고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대한민국 형법사 70년 중 60년간 성범죄가 친고죄였기 때문일까, 이미지를 바꾼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

과거에 성범죄 사건을 종결시키기 위한 방법으로서 행해지던 합의 시도는, 이제는 선처를 받기 위해 이루어진다. 법관은 형종을 선택하고 형량을 정함에 있어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을 존중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데(법원조직법 제81조의7 제1항 본문), 양형기준은 가중 및 감경과 관련한 특별양형인자와 일반양형인자를 제시한다. 특별양형인자는 당해 범죄유형의 형량에 큰 영향력을 갖는 인자로서 권고 영역을 결정하는 데 사용되고, 일반양형인자는 결정된 권고 형량범위 내에서 선고형을 정하는 고려된다.

특별양형인자는 다시 행위인자(범죄행위 자체에 관련되는 요소)와 행위자/기타인자(피고인에 관련되는 요소 및 범행 후의 정황에 관련된 요소)로 나누어 지고, 같은 특별양형인자 상호 간에는 행위인자를 행위자/기타인자보다 중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법관은 위 양형인자들을 평가원칙에 따라 종합적으로 적용하여 최종 형량을 도출한다. 한 피고인에 대한 형량이 정해지는 과정은 꽤 객관적이고 산술적인 편이다.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표시는 성범죄 양형기준에서 특별양형인자 상 행위자/기타인자 내 감경요소로서 규정되어 있다. 즉, 피해자와의 합의 사실은 권고 형량범위를 결정함에 있어 감경인자가 되므로, 상당히 중요한 양형자료가 된다. 성범죄는 중범죄에 해당하고, 신상 정보 등록 및 공개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성범죄가 발생하였고 당사자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한다면, 피해자와의 합의는 (윤리적 ‧ 도의적 측면을 차치하고) 법률적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절차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합의 과정은 대단히 예민하고 복잡할 수 있으며, 합의서의 작성 또한 법률적인 요소들이 정확하게 포함되어야 한다. 피고인이 직접 합의를 수행하고자 한다면 한계가 명확할 수밖에 없다.

최근, 성범죄의 2차 피해와 관련하여 피고인 측의 직접적인 합의 시도가 금기시 되기도 한다. 피고인 측의 연락 시도 자체가 피해자에게 또 다른 가해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피고인의 연락시도에 피해자의 트라우마가 발생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고 가해자 측의 직접적인 합의 시도 중 추가적인 언쟁이나 모욕, 폭행 등이 발생하여 사건이 더욱 심각해지는 경우도 적잖이 봐왔다. 피고인 측의 직접적인 합의 시도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볼 때도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2편)에서는 성범죄의 2차 피해의 의미와 관련 규정들을 검토하고 성범죄 사건에서의 상호 모두를 위한 가장 바람직한 합의의 방법과 양상을 실무적 차원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성범죄가 아니더라도 피해자와의 합의는 쉽지 않은 일이며 2차 피해 또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사자가 혐의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형사 사건은 대단히 조심스럽고 면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 박지양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변호사시험 합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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