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입에서 보주가 하나든 혹은 둘이든 혹은 셋이든 혹은 넷이든 혹은 무량보주가 나오든 그 모든 예들을 제6회에서 보았다. 하지만 이상의 모든 예들에서 보다시피 용의 입에서 하나가 나오는 경우에도 계속하여 또 하나가 나오고 또 하나가 나오는 등, 무량하게 보주가 나온다는 것임을 깨쳤다. 즉 여러 가지 형식들이 있으나 모두가 무량보주로 귀결한다는 것이다.
- 여래가 무량보주, 용 또한 무량보주, 불상연구 획기적 성과
- 영기문은 만물생성의 근원이자 용을 최고의 창조신 반열에
무량보주가 나오는 예는 따로 독립적으로 크게 만들기도 했는데 그 좋은 예로 바로 ‘무량보주 투각 고려 향로’를 둘 수 있다. (도 1) 이미 앞서 다루었으나 다른 맥락에서 새로 정리해 본다. 여래가 무량보주이므로 고려 향로의 투각 무량보주의 자리에 여래좌상이나 입상을 둘 수 있다. 그러므로 여래는 무량보주이며, 용 또한 무량보주라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은 불상 연구의 획기적 성과다. 이상의 내용은 훗날 논문으로 써야 할 가장 중요한 내용이므로 이 글에서는 이쯤 해서 설명을 그치려 한다. 그러니까 논리적으로 연꽃 위에 하나의 보주가 있어도 무량보주라고 말할 수 있다.
‘옹마니반메훔’ 보주를 밝혀져서야 ‘해독’
일찍이 안산 기슭의 봉원동에서 산 적이 있다. 매일 봉원사(奉元寺)에 올라가서 구석구석 살폈는데 배운 바가 컸다. 어제 다시 칠성각에 가서 다시 촬영했다. ‘옹마니파드메훙’을 고요히 바라보며 감격했다.(도 2-1, 2-2) ‘옹마니파드메훙’을 최초로 해독한 까닭은 <보주>를 밝혔기 때문이다. 흔히 ‘옴마니반메훔’이리고 세간에 불려지며 해괴한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조형적인 최고 진리가 무참하게 파손되고 있다. 성철 큰 스님께서는 일찍이 산스크리트 발음 그대로 ‘옴마니파드메훔’이라 불러야 한다고 역설하며, “옴 연꽃 속의 보석이여”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옹 연꽃 속의 보주여 훙”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보주>를 모르면 영원히 풀려질 수 없을 것이다. 관음보살을 부르는 진언(眞言)이라 여기고 말뜻을 알려고 하지 않고 기도할 때 수없이 외우기만 해야 했다. 말뜻을 알려고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아무도 몰랐다. 이제 뜻을 알았으니 오직 관음보살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불보살을 부르는 다라니(陀羅尼) 즉 진언이 아닌가. 그래서 조형적 최고의 진리를 봉원사 칠성각에서 고요히 바라보았었다. 불교 사상의 연구에서 가장 중대한 문제를 처음으로 풀어낸 세기적인 사건이라고 누가 알겠는가.
용의 입에서 무량한 보주가 나온다는 것에 이어서, 보주가 없더라도 제1영기싹, 제2영기싹, 제3영기싹이 나오는 것을 경주의 통일신라 왕경 월성(月城)의 월지(月池) 출토 녹유 용면와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이제 내가 왜 통일신라가 용을 완성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용 얼굴의 정면을 표현한 용면와에서는 몸이 보이지 않지만, 즉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긴용을 앞에서 보면 얼굴만 보이지 몸은 보이지 않는다. 즉 용면와는 긴용을 정면에서 단축법(短縮法), foreshortening)으로 표현한 것임을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즉 용면와 공간을 가득히 표현한 용 얼굴에 가리어 긴 몸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 증거로 용면와의 입 양쪽에 두 앞 다리가 표현되어 있는 예로 보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도 3)
기와 중 단연 돋보이는 녹유 용면와(綠釉 龍面瓦)
그런 생각을 가지고 녹유 용면와를 분석해 보기로 한다.(도 4-1) 신라시대와 통일산라시대 1000년간의 왕궁이었던 월성(月城)의 월지(月池)에서는 헤아릴 수 없는, 신라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기와들이 발굴되었는데 나는 늘 그 현장에 있었다. 그 기와 중에 단연 돋보이는 것이 ‘綠釉 龍面瓦들’이었다. 녹색유약을 입힌 경우는 여래나 사천왕상 같은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용이 세계 최고의 창조신임을 내가 밝혔으므로 녹유를 입힌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용면와라고 모두 녹유을 입힌 것이 아니라, 입히지 않는 경우가 쓰임새 때문인지 더 많다. 용의 얼굴을 보면서 현실에서 보이는 뿔, 눈썹, 눈동자, 귀, 코, 입, 치아 등이라 부르는 형태들이 있으나,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 그 모든 것을 보주, 제1영기싹, 제2영기싹. 제3영기싹으로 마땅히 불러야 한다. 채색분석하면 알 수 있다.(도 4-2) 그래야 용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최고의 창조신에 무슨 뿔이 있고 입은 왜 그리 크게 벌리고 있는가. 용이 무량보주라면 현실에서 보는 형태들로 표현할 수 없고, 모두 갖가지 영기문들로 나타내야 한다. 용의 얼굴 전체가 그럴 뿐만 아니라, 다시 용이 입을 크게 벌리며 보주, 즉 무량보주, 제1영기싹, 제2영기싹, 제3영기싹이 나와 거기들에서 만물이 생성한다. 용면와를 더 단순화하면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도 4-3,)
그러므로 영기문은 만물생성의 근원이다. 용을 최고의 창조신이라 부르는 까닭이다. 이처럼 용면와를 채색분석하며 나의 영기화생론(靈氣化生論)이라는 사상이 정립되어오고 있다. 그런데 용면와 주변의 ‘문양 띠’ 안의 연이은 보주, 즉 연주문(連珠文)은 용의 입에서 나오는 무량보주를 나타낸 것이다. 이제 용면와의 모든 영기문들은 4가지 형태소로 귀결됨을 알 것이다. 알기 쉽게 정리하면 (도 4-4, 4-5)와 같다.
25년간 30000여 점의 세계미술품들을 채색분석하고 단순화해오는 동안, 마침내 이른바 문양들이 모두 이 4가지 형태소로 귀결됨을 크게 깨달았다. 빙산(氷山)의 일각(一角)만을 우리가 알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 바다 밑의 무한한 산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여 인간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하는 위대한 시대가 도래한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측면에도 영기문이 있다. 그것을 그려서 채새분석해 보면, 연이은 제1영기싹과 연이은 제3영기싹이 함께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도 4-6) 즉 이 영기문도 용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
통일신라 용면와 용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
제6회에서 보주만을 다루었던 양감 있는 뛰어난 녹유 용면와를 다시 소환하여 영기문을 분석해 보겠다.(도 5-1) 채색분석해 보니 더욱 웅장하다.(도 5-2) 입에서 나오는 영기문과 양 쪽 변의 영기문도 단순화했다.(도 5-3) 갖가지 여러 모양의 영기문이 복잡하게 보이지만, 4가지 형태소만 파악하면 쉽게 보인다. 입에서 나오는 연이은 영기문을 입에서 나오도록 그려보았고, 다시 더 연장하여 끊임없이 확장할 수 있으므로 그려보았다.(도 5-4) 그리고 역시 연이은 제3영기싹으로 표현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제3영기싹에서 무량한 보주가 발산하고 있음을 그려 넣을 수 있다.(도 5-5)
통일신라 용면와는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게 표현했다는 것은, 용의 입에서 나온 보주, 제1영기싹, 제2영기싹, 제3영기싹 등, 4가지 기본적인 형태소가 나와 만물을 생성하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주에서 그런 영기문이 나오는 것과 같아서 다시 그려보았다. (도 5-6) 그 4가지 형태소로 더 나아가 세계미술을 역시 모두 해독하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놀랍지 않은가.
고려 시대의 용면와를 보면 놀랍기보다는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도 6-1) 나는 고려 시대의 기와에 큰 매력을 느껴서 매우 좋아한다. 통일신라 것보다 엄정하지는 않으나 비대칭에다가 부분 부분들의 영기문들이 삐뚤빼뚤하고 뺨마저 둥근 보주로 표현하고, 치아들도 균일하지 않은 모양이지만, 엄연한 보주들이다. 이렇게 생겼다고 업신여기면 안 된다. 여전히 최고의 창조신이다. 모든 영기문은 역시 채색분석해 봐야만 뚜렷이 보인다.(도 6-2) 아, 용의 얼굴 부분 부분을 모두 보주로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입 양쪽으로 제1영기싹이 나오고 있다. 이것은 보주에서 양쪽으로 제1영기씩이 나오는 것과 같다.(도 6-3)
용 최고의 창조자 증명...그래도 가혹한 형벌 계속
이제 더 말이 필요 없다. 그러나 항상 계속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운명이다. 거대한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면 다시 굴러 내리고, 그러면 꼭대기가지 다시 올려야 한다. ‘시지프’처럼 신을 기만한 적이 없는데도, 용이 최고의 창조자라고 처음으로 밝혔는데도 왜 용신(龍神)은 나에게 이런 끊임없이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것일까.
강우방
·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 미국 하버드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 국립경주박물관장
· 이화여대 초빙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