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 심정지 대부분 70세 이상
위기상황 대비 심장자동충격기(AED) 설치 기준 없나?

소방관들이 쓰러진 행인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하고 있다. [소방청]
소방관들이 쓰러진 행인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하고 있다. [소방청]

[일요서울 | 이창환] 뉴스나 유튜브 등을 통해 급성 심정지 환자가 주변 사람들의 심폐소생술(CPR)에 의해 의식을 되찾고 119에 실려 가는 장면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심폐소생술은 평소 교육을 받아온 사람이나, 익숙한 이가 아니면 사실상 긴급한 상황에서 시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를 보조하기 위해 나온 것이 바로 자동심장충격기 또는 자동제세동기(AED)라 불리는 기기다. 그간 정부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의 개정 등을 통해 대형 빌딩이나 인구 밀집 구역 등으로 설치 의무화를 확대해 왔다. 그럼에도 사각지대에 대한 지적은 여전하다. 급성 심정지 환자의 경우 절반 이상이 70세 이상 노인들임에도 이들이 모이는 대표적 장소인 경로당 보급률은 매우 낮다. 재정 자립도가 높은 서울시의 경우에도 AED 보급률은 10% 수준에 머물러 있다. 

AED 활용 시 급성 심정지 환자 생존률 7.4%에서 44.1%로 상승
대한노인회, “심정지 발생 70대 이상 노인 53.9%, 경로당 배치 必”

대개 남성들의 경우 군복무 기간이나, 전역 후 민방위 훈련 기간 중 급성 심정지 환자 응급처치를 위한 심폐소생술 및 AED 사용법을 배우기도 한다. 하지만 해당 기간을 마치더라도 반복된 학습이 필요하다. 이에 최근에는 소방청 예하 각 지역 소방서에서 각급학교나 항공사 승무원, 관공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및 AED 사용법 교육에 나서기도 했다.

소방청 교육자료를 보면 AED 활용단계는 총 4단계로 ▲ (1) 전원 켜고 패드 부착 ▲ (2) 심장리듬 자동분석(환자접촉금지) ▲ (3) 심장전기충격(충격버튼 누르기) ▲ (4) 심폐소생술 재시행 등으로 이어진다. 2번부터 4번까지 반복하며 119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리거나, 환자가 깨어날 때까지 반복하면 된다. 

문제는 AED 보급률인데, 법으로 정해진 구역이 아니라면 지자체 자체적으로 추가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예산 없이 장비를 구매할 수도 없고, 누가 장비를 선뜻 내 놓을 수도 없는 일이다. 간혹 전철역이나 대형 건물을 들어서면서 볼 수 있는 AED 장비는 대부분 시범 설치에 의한 것일 확률이 높다. 

AED 필요한 심정지 환자, 연간 3만5000명 넘어

‘2011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설치된 경우는 500세대 이상 공동주택에 해당한다. AED 설치 의무화에 의해 주상복합이나 대단지 아파트 등의 경우 1층이나 아파트 입구 주변 등에서도 이를 발견할 수 있다. (간혹 유동인구를 고려해 외부에 독립적으로 설치된 곳도 있음)

또 올해 2월부터 AED 의무 설치 대상이 ‘관광지·관광단지의 관리사무소와 안내시설’로도 확대되면서, 전철역이나 일부 밀집 구역 등 시범설치 장소가 향후 의무설치 대상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있다. 다만 그 사이 소방청 등의 자료에 따르면 AED가 필요한 심정지 환자는 2012년 기준 연간 2만7823명에서 2022년 기준 3만5018명으로, 10년 동안 25.86% 급증했다.

일부 지자체는 이런 상황에 따라 시청 민원실 및 보건소, 행정복지센터 등 일부 관공서 등에도 AED 시범 설치를 자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경로당은 상대적으로 유동인구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시범설치 대상에서 빠진 경우가 대다수다. 전국 단위로 확대해 보면,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모든 경로당에 AED를 보급한 만한 예산이 없다. 

지난 2월 서울시 자료를 토대로 매일경제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서울시의 경우 겨우 전제 경로당 3535곳 가운데 342곳에 AED를 설치해 10% 수준의 보급률을 보였다. 전국 지자체로 범위를 확대하면 보급률은 파악도 어렵다. AED 보급률이 10% 미만이라는 의미다. 경로당에서 급성 심정지 환자가 발생하더라도 초기 대응이 절대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심정지 70세이상 53.9%… 경로당 보급률 10% 미만

그럼에도 AED 보급이나 설치가 법적 의무가 아닌 상황에서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추가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경로당마다 각각 규모도 다른데다 그에 속한 인원도 천차만별이다. 중앙정부나 국회가 나서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부처라도 법과 제도가 마련되지 않는 이상 섣불리 정부 예산을 쓸 수도 없다. 결국은 시선이 국회로 모인다. 국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법안이 수차례 발의되거나, 계획된 바 있지만, 아직 어떤 결과도 얻지 못했다. 

2018년 김광수 전 민주평화당 의원이 이와 관련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당시 김 전 의원은 AED 등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 응급장비 설치 의무가 경로당을 설치·운영하는 사람에게도 있어야 한다고 내다봤다. 이에 AED 설치와 함께 응급처치에 관한 교육도 함께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당시 김 의원은 “질병관리본부 조사 결과. 2016년 국내 급성 심정지 환자가 3만 명에 육박하고, 급성 심정지 환자 중 70세 이상 노인비율이 2006년 38.7%에서 2016년 49.5%로 11년 동안 10%포인트 이상 늘었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라며 “건강취약계층에 속하는 노인들은 심정지를 비롯한 심장 질환 위험에 노출돼 있는 만큼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더욱이 AED를 설치하는 시설에 대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정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회기를 종료하면서 자동 폐기됐다.

복지부 관리지침 있다는데, 지자체 공유되나?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22년 기준 질병관리청 및 소방청의 조사통계에 따르면 급성심정지 환자 가운데 70대는 21.8% 80대는 32.1%에 이른다. 결국 심정지 환자 가운데 70세 이상이 무려 53.9%에 이른다는 말이다. 김 전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폐기된 이후 더욱 확대된 셈이다.

사실 올해 5월 보건복지부는 ‘공공장소 및 다중이용시설의 자동심장충격기(AED) 설치 및 관리 지침(제7판)’을 내놨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사항을 반영해 “심장정지 발생 위험이 높은 시설, 일반인 접근성이 높은 시설 등을 중심으로 우선 지원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인복지법’ 제36조에 따른 노인여가복지시설 중 노인복지관 및 연면적 135.53㎡(약 41평) 이상이면서, 전년도 일평균 이용인원이 20명 이상인 경로당을 대상이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전국 17개 지자체 가운데 예하 시군의 경로당 규모를 파악하고, 일평균 이용인원 20명 이상인 곳에 대한 확인에 나선 곳은 없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자체적으로 경로당 규모 파악은 힘들다”라며 “시군의 협조를 받고 진행해야 할 상활”이라고 답변했다. 또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아직 이와 관련 정부 정책에 대해 들은 바는 없다”라면서 “보건복지부 등에서 관련 정책이 나와야 지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대한노인회 관계자는 지난 29일 “일부 단체에서도 경로당의 AED 보급을 위한 제안이 있었으나, 결국은 지자체 예산 편성이 필요한 사안이더라”라면서 “이에 대한 예산 확보를 위해서는 보건복지부나 국회 보건복지위 등에서 논의해서 결정해줘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