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5] 1967년 청계고가도로 건설·복개된 지 47년 만에 인공물길 이뤄

[사진제공=중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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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김정아 기자] 세계의 메트로폴리스로 부상하고 있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2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품은 도시로 선사시대부터 현재를 망라한 시대별 유적과 유물이 발견돼 오고 있는 곳이다. 한강 물줄기를 품은 서울은 시대마다 위례성, 한산, 한성, 한양, 양주, 남경, 경성 등으로 달리 불리며 삶의 격전지이자 터전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지령 1441호부터는 수도 서울 탐방기와 연계 기사로 서울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독자에게 소개할 명소, 명인을 찾아 나서 보겠다.

역사 유적지와 관광지로 구분되는 중구 명소 탐방은 자연 체험을 할 수 있는 명소로 세분화 돼 있다. 특히 중구를 대표하는 스토리 여행지가 100선을 중심으로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알려지면서 외국인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해설사와 함께하는 도보관광길로는 한양도성 남산구간, 광화문 달빛로드, 장충단 호국의 길, 정동한바퀴, 순례역사길, 명동역사투어길, 남산기억로, 중구역사문화코스로 구분돼 있다. 

이번 시간에는 중구역사문화코스길에 속하는 백범광장, 숭례문, 한국은행, 덕수궁, 청계천, 광화문, 경복궁, 청와대 중 청계천과 광화문을 둘러보는 시간을 갖겠다. 

▶청계천 

서울의 중구와 종로구를 가로질러 왕십리까지 흘러들어 가는 청계천은 10.84km의 물길이다. 서울을 둘러싼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중랑천과 만나 살곶이 다리를 거쳐 한가운데로 흘러들어 간다. 수백 년간 도심 하천 기능을 담당했던 청계천은 복원과 개발의 연속선상에서 지금의 모습의 갖췄다.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대대적인 하천정비 작업으로 복개 공사가 착수됐다. 1960년 4월 1단계 공사가 완공됐고 너비 50m의 간선도로도 착공돼 청계천은 지하에 하천을 덮어 둔 채 고가도로로 모습이 변모됐다. 1967년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됐고 복개된 지 47년 만에 다시 모습을 갖춰 인공물길을 이뤘다. 

근현대사에서 청계천은 격동의 물길이었다. 1969년에는 주택 150채가 소실되는 숭인동 판자촌 화재사건이 있었고 1970년대에는 청계천 주변의 시장 상권을 중심으로 의류공장이 들어섰다. 1987년부터 청계천이 광장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선거 유세장이 되기도 하고 대규모 집회의 장소가 되기도 하면서 서울 중심을 지켜왔다.

▶광화문

경복궁 남쪽에 있는 정문에 해당하는 광화문은 건립 당시에는 남문으로 불리다가 1426년 집현전학자들에 의해 광화문으로 명명됐다. 3개의 아치형 문을 낸 석축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문루를 올렸다. 지붕은 우진각지붕으로 용마루와 추녀마루에 회반죽을 발라 양성바름을 했고 망새와 용두, 잡상 등을 설치 해 지붕 위를 장식했다. 광화문 정면 좌우에는 상상의 동물이자 영물인 해태상을 설치했다. 

 

경복궁 창건 시기인 1395년 건립되었다가 1592년 임진왜란때 소실됐고, 1865년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광화문도 동시에 지어졌다. 1990년 경복궁 복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역사바로잡기의 일환으로 1996년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훼손된 경복궁의 전각을 복원했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광화문은 2006년 철거됐고 2010년 고종 때 중건 당시 모습으로 원래의 위치에 광화문을 복원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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