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열폭주’ 염려에 … 제조사마다 ‘배터리 정보’ 공개

인천 청라의 한 대규모 아파트 지하주차장 화재 사고를 불러온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화재 현장에서 합동조사단이 현장 감식에 나섰다. [글=이창환 기자, 사진=뉴시스]
인천 청라의 한 대규모 아파트 지하주차장 화재 사고를 불러온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화재 현장에서 합동조사단이 현장 감식에 나섰다. [글=이창환 기자, 사진=뉴시스]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최근 인천의 한 대단지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화재사건으로 완성차 업계가 정부 및 국민 눈치를 보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정보 공개를 권고한 정부의 방침에 따라 제조사마다 자신들의 전기차 모델은 “안전하다”는 입장과 함께 배터리 정보를 내놓고 있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화재에 대한 소비자 불안감을 완벽하게 떨칠 수는 없어 보인다. 이른바 ‘전기차 포비아(공포) 확산’이라는 보도에 이어 중고 전기차 시세도 하락세다. 글로벌 최대 전기차 판매사인 테슬라 등 전기차 제조사들은 애가 탄다. 

전기차 화재 배터리 연쇄 폭발 ‘전기차 포비아(공포증)’ 확산
테슬라 등 중고 전기차 하락세… 배터리 정보공개 반전 카드?

전기차 화재발생에 대한 염려는 비단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다. 2010년대부터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초기형 전기차 모델에 대한 출시·판매에 나서면서 여기저기서 화재 발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원인 모를 화재가 이어지자 제조사들이 대안으로 내놓은 방법은 ‘전기차 80% 충전’이었다. 

“화재 예방을 위해 100% 충전을 하지 말라”는 말은 완충 상태에서의 화재 발생률이 높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즉 배터리의 성능을 모두 발휘하게 되는 순간 화재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로도 통했다. 전기차 판매율이 저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2020년 서울 한남동의 한 아파트에서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 A씨가 운전하던 테슬라 차량이 지하주차장에서 벽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충격으로 차량 배터리에 화재가 발생했고, 아파트 경비원 및 소방관 등이 화재진압에 어려움을 겪어 25분 만에 구해낸 A씨는 사망했다. 화재는 이후에도 잡히지 않아, 승용차 한 대를 진압하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로부터 4년, 이 기간에 국내 전기차 보급률과 인프라 확대는 글로벌 ‘테스트 베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세계 최고 수준. 올해 3월 기준 전기차 보급률은 55만 대에 충전기 보급은 33만 기다. 충전기 1기당 전기차 비중이 1.8대로, 테슬라의 고향 미국 16대, 유럽 13대에 비해 압도적이다. 전 세계 전기차가 밀려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순리라는 풀이가 나온다. 

정부, 완성차업계에 배터리정보 공개 권고

이에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아우디·폭스바겐 등 독일 3사와 테슬라를 비롯해 스텔란티스(지프·푸조 등) 등 북미계 글로벌 업체 및 토요타·렉서스 등 일본계 차량과 볼보·폴스타까지 한국시장에 전기차를 쏟아냈다. 여기에 현대·기아와 KG모빌리티 등 국내 기반의 전기차까지 경쟁에 오르면서 모터쇼나 신차 출시 행사에서 전기차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기술발전과 시장 형성에 비해 화재 대응 방침 등은 다소 미비 상태였던 것도 사실이다. 전기차 화재의 특징은 내연 기관 차량과 달리 물로 끄기도 힘들고 국내 보급률이 높은 분말 소화기로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리튬 배터리의 경우 이온이 고열로 폭발하면서 화재가 동시에 발생하는데, 분말소화기나 물로는 완전한 산소 차단이 불가능하다.

배터리 스스로 산소를 발생시킬 수도 있는 구조여서 소화된 듯 보여도 재발화할 수도 있다. 이에 지난해 12월 국내 한 포럼에서는 전기차 화재 발생 시 아예 차량을 물에 담그는 것을 진압 방법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제조사별로 배터리의 특징도 달라 이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에 결국 정부가 나섰다. 정부는 국내에 보급된 전기차량의 배터리 정보를 모든 제조사들이 자발적으로 공개하라고 권고했다. 이는 전기차 소유주의 불안을 불식시키고, 해당 정보를 공유하는 데 의의가 있다. 더불어 ▲전기차 배터리 충전시설의 안전성 강화, ▲화재 발생 대응시스템 구축, ▲지하 주차시설 개선 구체화 과제 등을 내놨다. 

벤츠 EQE 350+ 배터리 모두 ‘파라시스’ 제품

화재가 발생한 벤츠 EQE 350+ 차량에는 중국의 ‘파라시스’ 배터리셀이 적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벤츠코리아는 “모든 벤츠 차량의 배터리는 100% 지분 보유 자회사 생산”이라면서 “배터리셀은 다양한 제조사로부터 공급받는다”라고 밝혔다. 벤츠의 배터리셀은 파라시스 외에도 중국 CATL 제품과 LG에너지솔루션 및 SK온 등 국내 기업 제품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벤츠 차량 화재 사건 이후 정부의 권고에 따라 현대, 기아, KG모빌리티, 르노코리아, 한국GM 등 국내업체를 비롯해 BMW, 아우디·폭스바겐, 스텔란티스 등 글로벌 완성차업체들도 모두 자발적 배터리 제조업체 정보 공개에 나섰다. 볼보, 폴스타2, 렉서스와 포르쉐까지 모두 배터리 정보공개에 합류했다. 해당 정보는 대부분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LG에너지솔루션(LG화학 포함)과 SK온, 삼성SDI 등 국내 기업 제품이나 중국 기업 CATL 제품을 사용했고, KG모빌리티는 BYD, 렉서스는 토요타 관계사인 프라임플래닛에너지 & 솔루션즈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테슬라의 경우 모델3 및 모델Y 일부 모델에 LG 제품을 쓰고 그 외에는 CATL 배터리를 사용했다. 

아이오닉5·모델Y 등 중고 하락세 이어질까

정부는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를 통해 소비자 불안을 줄이겠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중고시장에서의 전기차의 입지는 별로 좋지 않다. 국내 최대 중고차 거래 플랫폼인 엔카닷컴은 지난 6일 “8월 휴가철은 중고차 비수기”라면서도 “전기차 캐즘 영향 속에 현대차의 아이오닉5와 테슬라의 모델Y의 시세 하락이 눈길을 끈다”고 밝혔다. 

전기차의 시세 하락은 이미 3개월 연속 이어진 상황. 국내선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의 EV6 중고가격 하락세는 눈길을 끈다. 또 테슬라 일부 차종이 할인 프로모션과 겹치며 모델3 롱레인지는 2.61%, 모델Y 롱레인지는 3.36% 떨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엔카닷컴 관계자는 “충전 인프라, 배터리 진단 및 안정성 등 구매에 고려되는 요소가 다양해 중고차 시세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풀이했다. 

정부의 배터리 제조사 공개 권고에 따라 자발적으로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한 현대·기아 및 BMW를 포함해 대부분의 국내 판매 중인 전기차의 배터리 제조사가 공개됐다. 이런 가운데 이미 수개월째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테슬라 등 전기차가 중고시장에서 하락세를 이어갈지, 멈출지도 소비자들의 관심사다.

한편 소방청은 전기차 화재 대비 ‘질식소화덮개’ 및 ‘방사장치’ 등의 성능 기준을 도입키로 했다. 이 2개 종을 비롯해 총 12개 품목의 소방장비 기본규격 재정비 사업이 마무리 단계다. 특히 올해 처음 도입되는 질식소화 덮개는 차량 화재 시 주변으로 화재가 확산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덮개 형태의 장비로, 재질과 구조 및 성능 기준을 강화키로 했다.

또 전기차 화재 시 차량 하부에 소화 용수를 공급해 화재 확산을 지연시키는 보조장치인 방사장치의 경우 장치 높이에 대한 기준을 신설하고, 현장 대원의 안전을 위해 방사장치 손잡이 부분을 절연처리 하는 등 현장 의견을 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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