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패권경쟁의 본질은 반도체 전쟁이다. 반도체 전쟁의 다른 이름은 무역전쟁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진정한 강대국의 꿈은 포기해야만 한다. 이런 가운데 압도적 강대국이었던 미국의 시대에 서서히 금이 가고 있다. 위기감이 가득한 미국은 어떻게 해서든 중국의 도약을 저지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반면 중국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도체 굴기를 통해 패권 국가가 되려고 안달이다. 그 중심에 반도체 강국 대만이 있다. 대만을 점령하려는 중국과, 그런 중국을 막아내고 대만을 수호하려는 미국의 배경에는 오로지 반도체가 존재한다. 반도체가 총과 칼, 양식인 세상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는 극한의 생존경쟁인 셈이다.

1990년에만 해도 세계 반도체 시장의 매출 규모는 500억달러 가량 됐다. 그러던 것이 2002년엔 1,410억달러, 2018년엔 4,660억달러로 급증했고, 2030년경이면 1조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야말로 진정한 반도체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현재 퀼컴과 엔비디아는 펩리스(설계) 부문의 각각 23%18%를 장악하고 있다. 파운드리(공정/제조) 부문에서는 대만의 TSMC가 절반이 넘는 52%를 차지하고 있으며 삼성은 19%에 머물고 있다. 다만 D램의 경우 삼성이 44%, SK하이닉스가 29%로 양사 합쳐 71%로 압도적이다. 낸드메모리의 경우도 삼성이 36%, SK하이닉스가 10%를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밀리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대만의 TSMC를 손에 넣고 싶은 것이다. 미국은 이걸 그냥 두면 패권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

1990년대 후반에는 반도체 인력의 노령화, 재벌기업간 협업 부족 등으로 일본의 도시바, NEC(Nippon Electric Company) 강기업만 생존했고, 2000년 초반에는 미국, 유럽, 일본, 한국 등 다양한 기업들의 경쟁이 시작됐다. 하지만 팹리스 기업의 등장 이후 혁신동력이 줄어들면서 반도체 생태계가 급변했다. 반도체기술 정체기인 현재, 팹리스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보다는 현재의 반도체 기술을 활용한 설계기술에 주로 투자했다. 당연히 차세대 반도체 제조기술에 대한 투자가 대폭 줄었다. 일본도 자구노력에 나섰으나 생각보다 신통찮은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개발비용의 증가로 인해 반도체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기업의 숫자가 줄었다. 설계뿐만 아니라 제조기술 측면에서도 새로운 혁신기술개발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미래에는 반도체 위탁제조 산업이 더욱 성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이 설계에서 점차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최우수 인재의 육성, 파격적 보상을 미끼로 한 해외인재 영입에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중국의 설계기술을 충분히 앞서갈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면 애당초 미중 갈등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견제로 인한 중국의 가수요(假需要), 코로나-19로 인한 수요예측 실패로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처음으로 수요-공급 불일치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멈춰버린 혁신의 엔진을 어떻게 재점화하고, 누가 주도권을 가지고 갈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미국은 초격차 기술을 개발할 때까지 중국의 추격을 멈춰 세워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반도체 산업은 위기일까? 우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데 드는 비용의 증가다.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제조하는 데 드는 투자비용과 리스크 또한 증가한다. 후발주자의 추격도 거세지고 지역적 불균형이 시작된다. 결국 후발주자의 추격에 대한 인위적 통제(기술수출 금지)와 제조 물량에 대한 인위적 통제(지역내 투자유도)가 이어진다. 하지만 혁신없는 통제는 성공할 수 없으며,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제 반도체 기술은 기업간 경쟁이 아니다. 한마디로 국가간 경쟁의 시대인 것이다. 반도체 기술의 미래는 기본적으로 칩의 크기가 얼마나 성장하느냐에 달렸다. 기능향상, 소모전력 감소, 수율(收率) 확대는 칩의 크기가 증가해야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기업은 이중 집적 시스템설계 기술로 초격차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그러기 위해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 중국이 반도체 설계 분야의 전문성을 쌓고 반도체 제조 중심이 되는 상황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수시장과 우수한 인력을 확보한 중국으로서는 반도체 기술경쟁을 멈출 이유가 없다. 결국 미중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 셈이다.

결국 어떤 식으로건 일방의 우위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개발을 통한 공존의 길을 찾는 것이 美中 패권경쟁을 멈추게 하는 열쇠인 셈이다. 지금의 모습은 불길하고 우울하지만, 반도체의 미래는 오히려 지금보다 희망적 모습으로 갑작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기술개발과 인재유치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는다면, 미중 패권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반도체 산업이 전쟁터가 된 지 이미 오래란 사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그래야 살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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