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7,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대학병원들이 집단휴진에 돌입했다. 이번 의료사태 내내 그랬던 것처럼 정부는 구상권을 청구한다고 으름장을 놨고, 공정위는 의협이 휴진을 강제했다며 조사에 들어갔다. 제약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들을 경찰이 수사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한덕수 총리는 “(의사 휴진이) 의사와 환자가 수십년에 걸쳐 쌓은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라 했지만, 사실 의사에 대한 신뢰는 이전에도 없었던 모양이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가 돈독했다면 의대증원에 대한 의사들의 반대에 귀를 기울이는 이가 어느 정도 있었겠지만, 작금의 현실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환자를 버린 파렴치범이라며 의사를 매도하는 목소리만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고 있잖은가? 팩트체크 하나. 의사가 환자를 버렸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의대 증원으로 미래 수익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한 건 맞지만, 개업의와 2차 병원, 그리고 대학병원 (대병)은 그간 환자진료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 중 일등공신은 당연히 대병 교수들, 1, 2차 병원과 달리 대병은 전공의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입원환자를 돌보고 당직을 서며 수술까지 도와주던 전공의들이 모두 떠난 지금의 대병은 반팔 차림으로 시베리아 벌판에서 버티는 것에 비유될 수 있을 터, 그런데도 대병 교수들은 기꺼이 벌판에 섰다. 그분들이 주 40시간의 법정근로시간을 아득히 넘어서는, 100시간의 살인적인 근무를 마다하지 않은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를 버리면 안 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으리라.

안타까운 점은 이들의 희생을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는 것, 4년 전 있었던 택배노조의 파업과 비교해 보자. 코로나로 인해 택배물량이 늘어난 2020, 일감이 많아지자 과로로 죽는 택배기사가 여럿 나왔다. 그러자 택배노조는 배달할 지역의 물품을 분류하는 인력을 따로 뽑아달라며 파업에 돌입했다. 한 시민단체가 이에 호응하는 차원에서 만든 게 늦어도 괜찮아캠페인, 일반 국민은 물론 정치권도 이에 동참했다. “택배 기사분들이 안전하게 배송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에 캠페인에 동참하게 됐다.” 민주당 이재명도 늦어도 괜찮아란 글을 자기 SNS에 올렸다. 하지만 대병 휴진에 대한 반응은 택배노조 파업 때와 180도 달랐다. 모두가 대병의 휴진을 비난했을 뿐, 이에 호응하는 목소리는 아예 나오지 않았다. 왜 이렇게 반응이 극과 극일까. 이유는 결국 이었다. 한 언론사가 쓴 기사 제목을 보라. ‘환자들 절규에도 연봉 3억 의사들, 결국 총파업 전운.’ 팩트체크 둘. 실제 대병 교수들의 연봉은 12, 3천 정도에 불과하다. 2020년 보도에 의하면 CJ 대한통운 기사들은 월 700을 받고, 억대 연봉자도 20%에 달했다는데, 인간의 생명을 책임지는 대병 교수들이 저 정도 돈을 받는 게 잘못된 것일까?

욕먹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 있다. 도무지 이 사태가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정부가 정원 재협상은 없다는 강경한 방침인데다, 떠난 전공의는 돌아올 기미가 없으니 말이다. 전국의 의대생까지 다 같이 수업거부를 했으니, 내년이라고 인턴이나 전공의가 들어온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대병 교수들은 이런 생각을 할 법하다. ‘이렇게 무리하다 죽는 거 아냐?’ 실제로 전공의가 없는 기간 환자를 도맡아 보던 부산대병원 교수가 뇌출혈로 숨지는 일이 발생했으니, 연령대가 40, 50대가 대부분인 대병 교수들이 느낀 공포감은 엄청났을 것이다. 하지만 택배노조 때와 달리 이분의 죽음은 별반 이슈화되지 않았고, ‘과로와 무관하다는 병원 측의 일방적 발표만 언론에 보도됐다. 이런 상황에서 대병에 끝까지 남아있을 교수가 얼마나 될까. 그러니까 지금 대병 교수들이 병원에 사직서를 내는 건 파업의 차원이 아닌, 생존을 위한 것이다. 우리 국민의 수명이 세계 최상위권인 것은 난이도 높은 질병도 척척 고쳤던 대병 덕분, 지금 그 대병이 무너지는 중인데도, 정부는, 언론은, 그리고 국민은, 계속 의사만 욕한다. 예언 한 가지. 세월이 흐른 뒤 우리 국민은 지금 이때를 사무치게 그리워할 것이다. 다음 말도 덧붙이리라. ‘그 좋던 의료를 망친 게 윤석열 정부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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