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니홍조(雪泥鴻爪)’는 눈 녹은 진창 위의 기러기 발자국처럼 흔적 없는 인생의 자취를 비유하는 말이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 중 ‘설니홍조의 삶’을 영위하지 않은 지도자는 건국 대통령 이승만과 부국 대통령 박정희가 아닐까 생각한다. 성공한 대통령 되기가 어렵고, 역사에 남는 대통령 되기는 더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여야 모두 당 대표의 임기는 2년이다. 그러나 정치 관례상 집권당 당 대표는 사실상 임기가 없다. 보궐선거에 져도, 총선에 져도 사퇴해야 한다. 심지어 대선에 승리해도 대통령 당선인에게 인사 재량을 주기 위해 사퇴하는 게 그간의 불문율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아서 그런지 3년이나 남은 차기 대선 경쟁이 지나치다.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져 레임덕으로 연결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여소야대 의회 구도 속에서 집권 여당의 정치적 기반은 취약하다. 따라서 당 대표는 영광의 길이 아니라 ‘형극의 길’이다.

대권을 염두에 두고 당 대표에 나서려는 국민의힘 예비주자들에게 ‘다기망양’의 고사를 들려주고 싶다. “대도(大道, 대권 행로)는 ‘다기망양(多岐亡羊, 생각이 과하면 길을 잃게 될 수 있음)’에 빠지기 쉽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다기망양’의 잘못을 범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대권의 길은 ‘붕정만리(鵬程萬里)’의 여정과 같다. 자칫 구만리 창공 위로 치고 올라가는 출발점에 서지도 못하고 탈락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작은 이익에 집착하면 큰일을 이룰 수 없는 법이다. 정도를 걸어서 ‘득당심(得黨心)’과 ‘득민심(得民心)’에 성공해야 한다.

2년 3개월 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지 불과 며칠 만에 ‘점령군’처럼 행세한다는 반발이 나왔다. 윤핵관이 ‘호가호위(狐假虎威)’한다는 비판도 함께했음은 물론이다.

7월 전당대회를 앞둔 국민의힘의 최근 상황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한동훈 대세론’을 펼치는 종편의 일부 논객들과 측근 당 관계자들의 맹목적인 부추김이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정치권 부나비들의 오만과 과신은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지금 반윤(反尹)을 앞세운 ‘한동훈 지지율’이 7월 전당대회까지는 지속된다 해도 3년 동안 유지될 수 있을까. 상정하고 싶지 않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정변(政變)이 발생한다든지,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더 폭락하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과연 정권재창출이 가능하겠는가.

한 전 위원장은 과거 이회창 총재가 김영삼 대통령과의 적대 관계로 실패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또한 패장(敗將)이 지지율만 가지고 다시 자유 우파를 이끌어갈 수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먼저 보수 정체성이 없는 주변의 ‘한핵관’을 정리하고, 법가(法家)에게 부족한 포용력과 덕을 키우며 은인자중(隱忍自重) 때를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국민의힘 당헌 71조 ②항에는 당 대표가 대선에 출마할 경우 대선 1년 6개월 전에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당권·대권 분리 규정’이 있다. 7월에 선출될 당 대표는 2025년 9월 8일(까지) 대표직에서 사퇴해야 한다. 따라서 2026년 6월 지방선거 후보 공천과 선거를 책임질 새 대표나 비대위원장을 다시 뽑아야 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당의 단합을 위해 대선에 뜻을 둔 사람들은 1년 1개월짜리 당 대표 선거에 불출마하는 게 옳다. 차기 당 대표는 ‘보수 대개혁의 과제’를 촘촘하게 수행해야 하며,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보수우파가 다시 회군할 수 있도록 당정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 이유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경제·민생·물가’(15%, 한국갤럽조사)이다. 고금리에 따른 소비 여력 부족으로 내수가 회복되지 않고 있으며, 서민 삶의 최후 보루인 자영업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물가안정 없이는 윤 대통령이 약속한 ‘서민과 중산층 중심 시대’는 공염불로 끝날 것이다.

지금 국민의힘에 필요한 것은 의원들의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아니라 거야의 의회독재와 브레이크 없는 폭주에 맞선 ‘단일대오(單一隊伍)’ 형성이다. 당연히 당 대표가 중심이 되어 검찰·법원까지 압박하여 삼권분립을 파괴하는 거야와 ‘민생정책 경쟁’을 펼쳐 이겨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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