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갤럽의 총선 전(3월) 유권자 정치 성향 조사를 보면 보수(32%)가 진보(28%)보다 앞섰다. 그러나 4.10 총선에선 참패했다. 중앙일보(4월 22일 자)의 여론조사는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한 유권자 10명 중 1명(10.1%)이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찍은 반면, 이재명 후보를 찍은 유권자 중 국민의힘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은 5.8%였다. 국민의힘의 총선 참패는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기존 지지층인 ‘보수의 이탈’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54개 지역구에서 양당이 얻은 득표율 차이는 5.4%p에 불과하다.

현대 보수주의 이론의 창시자인 18세기 영국의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보수는 과거를 보존키 위해 개혁한다”고 했다. 보수는 변화에 선제 대응함으로써 파괴적 혁명을 예방하면서 사회를 발전시킨다. 보수는 가치 보존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개혁한다. 개혁하지 않으면 수구이지 보수가 아니다. 따라서 여권 내에서 드러내놓고 ‘개혁 보수’를 자처하는 정치인들은 국민을 현혹하는 ‘사이비 보수’라 할 수 있다.

역사적 대개혁은 보수우파가 해왔다. 영국 보수당의 여성 선거권 도입, 미국 공화당의 노예 해방, 독일 비스마르크의 사회보장제도 창설은 대표적인 보수의 혁신정책이다. 박정희 대통령도 보수의 기본정신에 뿌리를 두고 그린벨트, 의료보험, 국민연금, 고교평준화 정책 등 진보 어젠더를 과감하게 도입했다. 보수는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개혁한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개혁은 ‘하면 된다’라는 구호 하에 근면·자조·협동 정신을 국민에게 불어넣었던 ‘새마을운동’이었다. 이것이 ‘박정희 정신’의 정수(精髓)이다.

문재인 정권 내내 포퓰리즘 ‘예산 배급 시리즈’와 반기업·반시장 정책 남발로 실업은 증가했고, 성장은 둔화됐고, 분배는 더 악화됐다. 최근 출간된 <변방에서 중심으로>라는 문재인 회고록은 ‘김정은 대변인’ 노릇에 전념해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긍정 평가했다. 문 전 대통령은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김정은의 어록을 소개하고 선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안보 경각심을 무너뜨려 김정은을 이롭게 하겠다는 것인가.

거야(巨野)는 지난 5월 28일 21대 마지막 본희의에서 ‘민주유공자법’ 등 악법만 통과시키고 민생법안은 걷어찼다. ‘셀프특혜법’인 민주유공자법은 경찰 7명을 불태워 죽인 부산 동의대 사건, 서울대 프락치 사건,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 관련자들이 민주유공자로 둔갑할 수 있다.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 재표결을 거쳐 폐기된 만큼 거야(巨野)는 22대 국회에서 동일 법안을 재추진하는 오기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 ‘보복 특검’으로 이재명·조국의 죄를 덮겠다는 ‘의회 독재’는 과거 진영 싸움을 딛고 히틀러가 독일을 전체주의 독재국가로 만들어 가는 과정과 놀랍도록 닮았다.

국민이 지난 총선에서 거야(巨野)에 더 많은 의석을 준 것은 대통령을 탄핵하라고 한 게 아니다. 협치의 국회운영 절차에 따라 법사위원장은 원내 2당에게 돌아가는 것이 순리인데, 거야가 ‘1당 독식’으로 몰고 가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국민은 거야에 회초리를 들 것이며, ‘승자의 저주’가 시작될 것이다. 민심은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법이다.

보수우파는 전통의 지혜와 경험적 지식을 기본으로 새롭게 변화해야 한다. 정치에선 법치·질서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가되, 경제에선 유연한 정책으로 성장·복지를 조화시켜야 한다. 좌파의 ‘갈라치기 전략’에는 ‘포용적 통합 전략’으로 제압해야 한다. 통합 전략의 핵심은 ‘중산층 강화’라는 국가발전 노선을 확실하게 세워야 한다.

국민은 집권당인 국민의힘에게 다시 한번 전열을 정비할 기회를 주었다. 황우여 비대위원장은 최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헌 개정과 보수정당의 정체성 확립, 여의도연구원의 역할 제고, 당원의 정치교육 기능 강화, 홍보활동 기능 개선 등이 자신에게 부여된 주요 개혁과제임을 분명히 밝혔다. 정확한 진단이다.

7월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당 대표는 황 비대위원장의 개혁과제를 승계해서 일관성 있게 완성해야 한다. 또한 보궐-지방-대선에 대비한 비전과 ‘보수 재집권 플랜’을 제시하고, 자유 우파의 전략 싱크탱크와 정치 아카데미를 만들어 ‘미래의 보수 리더’를 키워 보수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국민의힘은 개방·포용적인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할 책무가 있다. 파괴적 혁신과 국민이 공감하는 민생정책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유권자들은 국민의힘이 ‘보수의 대개혁’으로 국민 속으로 들어갈 때 더 큰 지지를 보내줄 것이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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