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은 '인생 책'으로 밀턴 프리드먼이 쓴 <선택할 자유> (이하 자유 ’)를 꼽았다. ‘자유방임주의와 시장제도를 통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주장한 미국의 경제학자라는 네이버의 설명처럼, 프리드먼의 <자유>는 결과적 평등을 얻으려는 정부의 정책이 어떻게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역설하고 있다. 윤대통령은 대학 시절 아버지로부터 <자유>를 선물받은 뒤 “2006년 중수부 연구관을 할 때까지 매일 갖고 다녔을 만큼 애독했단다. 당연한 얘기지만 <자유>는 대통령의 사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프리드먼의 그 책을 보면 단속이나 규제는 최소화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당시 검사로서도 공권력을 발동하는 부분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윤대통령의 저 말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억압에 학을 뗀 이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줬고, 그 덕분인지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 대통령은 의사와의 싸움을 시작한다.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싸울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대통령이니까. 안타까운 점은 대통령이 그 싸움의 과정에서 동원하는 논리가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프리드먼의 주장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세 가지만 보자.

첫째, 정부가 의대 입학정원을 2천명 늘리겠다고 했을 때, 전공의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의료천국이 된 비결은 낮은 의료수가로 인해 의사들이 더 많은 환자를 보려고 한 덕분, 이미 자리를 잡은 기성 의사들은 의사 수가 늘어도 별 영향이 없겠지만, 젊은 의사들은 미래수입이 감소하리라는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전공의들이 사표를 던진 것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이건만, 정부의 대응은 업무개시명령’ ‘사직처리 금지였다. 심지어 법정 최고형까지 언급했는데, 이건 공권력 발동 최소화란 대통령의 말과 배치되는 것 아닌가?

두 번째, 일부의 왜곡된 주장처럼 의사는 환자를 버리지 않았다. 개업의는 물론이고 2차병원도 열심히 환자를 보고 있는데다, 문제가 된 대학병원에선 원래 전공의가 하던 입원환자 돌보기’ ‘응급환자를 위한 당직등등을 교수들이 도맡아 하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나이든 교수들이 이 모든 일을 하는 건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다. 이 와중에 부산대병원 교수가 뇌출혈로 숨지는 사건이 터지자 의대 교수들로선 위기감을 느꼈을 터, 의협이 주 52시간의 근로시간을 준수하라는 공문을 병원 측에 보낸 것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조치였다. 그런데 여기에 관해 대통령실 관계자가 한 말은 충격이었다. “의사들에게 발급된 면허는 국민 생명을 위해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하라고 부여된 것으로, 52시간 준수가 의미가 없다.” 이 말을 전해들은 교수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정부가 조속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교수들의 목숨을 담보로 전공의와 계속 싸우려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세 번째, 부산대가 의대 정원을 기존의 125명에서 163명으로 증원하는 학칙 개정안을 부결시켰다. 증원 규모에 관한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대 교수들의 우려를 회의 참석자들이 받아들인 결과였다. 시설과 교육인력이 확충되지 않은 와중에 3천명이던 의대 정원을 70% 가까이 늘리는 건 의대교육의 부실을 가져올 테니, 교수들의 주장엔 일리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 관한 교육부의 입장은 황당 그 자체였다. “대학이 학칙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학생모집 정지 등 행정조치를 할 계획이다.” 의대생을 뽑지 않으면 내년 신입생을 한 명도 못 뽑게 하겠다는 것, 이것이 <자유>를 매일 갖고 다닌 대통령의 교육부가 할 말인가. 대통령은 동의하지 않을지 몰라도,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패배한 데는 현 정부가 추진한 무리한 의대증원도 한몫을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강경모드로 일관하는 대통령을 보면서, 지하에 있던 프리드먼이 다음과 같이 절규할 것 같다. “윤대통령! 어디 가서 내 책 읽었다고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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