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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현의 횡설종설(橫設從設)] 역사는 반복되는가?

2024-09-20     국민대 대학원 특임교수

간만에 온 가족이 모인 추석, 다행하게도 주변에 아픈이가 없던 탓에 의료대란 얘기는 별로 나오지 않았다. 이번 추석의 가장 큰 화제는 경제이야기, 어머니는 이번 추석 차례상 차릴 준비를 위해 시금치를 샀는데, 한 단에 12,000원이나 했다면서 물가를 걱정했다. 반복되는 경제 불황을 IMF사태에 사태에 견주어 당시 삶에 대해 들려주기도 했다. 경제 얘기가 집 값 문제로 옮겨가자 2019년 시작된 집 값 급등 사례를 들며, 하루라도 빨리 집을 사야하지 않겠냐는 얘기로 이어졌다. 반복되는 과거의 일들, 역사는 반복되는가?

반복이란 개념은 철학에 있어서 가볍지 않은 주제다. 역사의 반복에 관한 말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에서 칼 맑스가 한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소극으로라는 말이다. 이 말은 프랑스 역사에서 비슷한 사회적, 정치적 상황이 반복되는 상황을 표현하며, 특히 나폴레옹 1세의 등장을 비극으로, 나폴레옹 3세의 등장을 소극으로, 역사가 단순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각 시대의 특수한 조건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재현된다고 설명하기 위해 쓴 것이다. 흔히 역사적 순환론 또는 주기론을 믿는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나타난 전쟁이나 혁명 등 역사적 사건의 반복 양상을 설명하면서, 또는 인간의 욕망이나 본성이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역사의 반복성을 주장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와 같이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도 미래에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근원에는 이러한 역사의 반복성에 대한 믿음이 있다.

반복은 인간에게 매력적인 주제다. 60갑자의 회귀인 환갑(還甲)처럼 우리는 반복에 익숙하다. 반복은 우리에게 묘한 안정감을 준다. 과거의 사례를 연구하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는 안정감, 과거의 사례를 재현하거나 반대로 과거의 사례를 회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복은 인간에게 스승의 개념일 수도 있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지난 박근혜 탄핵 사례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한 쪽은 탄핵이 성공한 원인을 찾기 위해서일 것이고, 다른 한 쪽은 반대로 탄핵을 막을 방법을 찾기 위해서일 것이다. 양측 다 역사의 반복이란 관점에서 과거를 살핀다. 이번 의료대란의 본질인 전공의들의 파업 문제를 두고도 정부는 얼마 전 화물연대 파업을 제압한 사례를 검토했을 것이다. 역사의 반복이 교훈이니까. 그러나 인간의 삶은 반복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삶을 향한 전진이다. 과거의 교훈을 무시할 순 없지만, 너무나 많은 새로운 변수를 다 고려해 과거를 완벽히 반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게 과거를 보고 미래를 판단해선 안된다.

이번 추석은 이전 명절들과 달리 정치적인 문제로 가족 간 갈등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과거 명절의 반복은 실패한 것이다. 그 이유로 다양한 원인을 들 수 있겠지만, 과거 추석과는 확연히 다른 더위(날씨 얘기는 어느 자리에서나 나왔다), 전체적으로 비슷한 정권과 정치에 대한 입장, 앞서 언급한 경제 문제 등 상대적으로 가족들끼리 있어 정치가 덜 중요하게 다뤄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추석이 나름 조용하게 지나갔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국민들이 점차 외면하기 시작한 정치는 과연 어떻게 될까? 다음 명절까지 또 얼마나 시끄러울까?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