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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여류 추리작가 '권경희'의 추리퀴즈-당신의 추리력은?] 사이코 매직08

2024-07-19     권경희 작가

성철이 너스레를 떨었다. 커다란 머리가 우측으로 기울어졌다.
“앉아.”
지아는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미니스커트가 하염없이 말려 올라가며 탐스러운 허벅지를 거의 드러내 놓았다.
“자세가 너무 야하잖아?”
성철은 근엄한 척 자신을 속이려고 하지 않았다. 우선 지아에게 그것은 통할 노릇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아는 그 말에 생글생글 웃었다.
“미안해요. 마흔이나 된 회장님 앞에서.”
그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자세를 바꿀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지?”
성철이 물었다.
“저야 늘 그렇지요.”

지아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회장님이야말로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나야말로 늘 그렇게 지내지. 가시방석에 앉아 지내는 것 아니겠어.”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은 지뢰밭을 헤치고 다니는 것보다는 안전하잖아요?”
지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받는 말에 성철은 긴장을 했다.
“일이 잘못되고 있는 면이 있나?”
“잘못되긴요.”

지아는 여전히 심드렁하게 받았다. 그러나 그 속에 숨어 있는 불안을 성철이 놓칠 리 없었다.
“자, 속이지 말고. 무슨 일이 있지?”
“모르겠어요.”
지아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니?”
성철이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지나간 일의 자취를 찾는 것뿐이에요. 앞으로 다가올 일은 알 수가 없다고요.”
“하지만 사람의 일이란 계획 아래 이루어지는 것이잖아. 지아 양은 그 계획을 알아낼 수 있을 텐데?”
“저 역시 그걸 알아내고 싶어요. 하지만 어떤 전율이 전해질 뿐, 그 계획조차도 뿌연 안개같기만 해요. 그것은 공포의 그림자로만 존재하고 있어요.”
지아는 몸서리를 쳤다.

“지아 양은 그런 위험을 이길 힘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성철은 자신없는 말투로 위로를 했다. 지아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정말 위험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만일 내부 사람들 모두에게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면 위험이란 외부에서 오는 것이 틀림없잖아?”

“차라리 그런 것이면 좋겠어요.”
지아는 한탄조로 말했다.
“누군가가 심령방해(psymissing)를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심려방해?”
성철은 움찔했다. 그들이 우리의 계획을 눈치챈 것일까?
“도사님의 수업 진전은?”

잠시 딴전을 부리던 성철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
“고마고만해요. 갑작스런 진전이란 보기 어려운 법이잖아요.”
지아는 말을 하다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회장님, 지금 난승도사가 문제가 아니라고요! 내가, 이지아가 문제예요! 그 검은 그림자를 쫓아내어야 한다고요! 도와 주실  거예요?”
지아는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좁고 누추한 사무실에서 그녀의 몸부림은 오히려 신선한 일면이 있었다.

사무실은 장방향이었다. 기물이라고는 낡은 철제 책상과 어디서 들여왔는지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티크 책장, 그리고 지금 지아와 성철이 마주하고 있는 응접세트뿐이었다.
회색천으로 싸여 있는 싸구려 같은 느낌을 주는 소파와 닦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 손자국으로 바닥 무늬가 일그러져 내려다 보이는 유리테일블이 300명의 회원을 자랑하는 단체의 실체였다.

그리고 그 낡은 터 안에 마치 꽃처럼 아름다운 여성과 여성속의 절망, 그 절망을 즐기듯이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이 길고 긴 사슬처럼 얽매여 있었다.
마치 하나로 연결된 둥그런 사슬이었던 것이다. 그 눈의 임자는, 그녀를 절망 속으로 들여보낸 것은 바로 성철이었으니까.

따라서 성철에게는 그녀를 위로해 줄 말이 없었다.
그것은 계획의 취소를 의미했으며 계획의 취소는 초능력을 향한 모든 노력의 좌절이었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