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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은 여행작가의 서울이야기-마포구⑦] 불광천과 월드컵 공원

2024-07-19     여행작가

715일 초복이다. 33. 일기 예보에 의하면,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씨란다. 걷기조차 힘들다. 그나마 불광천의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면 걸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다. 불광천과 홍제천의 발원지는 북한산 비봉이다. 홍제천은 왼쪽으로 흘러내리고 불광천은 오른쪽으로 흘러내린다. 불광천과 홍제천이 다시 만나는 두물머리는 마포구청역 근처의 성산교다. 이곳에서 만나 한강으로 함께 흘러 들어간다. 마포구청역 7번 출구로 나와 합수 지점까지 걸었다. 불광천을 따라 월드컵경기장을 둘러본 뒤 문화비축기지를 들를 계획이다.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불광천.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  불광천과 홍제천 아주 길고 긴 선형 분수가 만든 하천
- 월드컵 난지비치, 하얀 모래사장이 펼쳐져...동해안 바다 연상

두 개의 물이 합쳐지면서 강폭이 넓어진 탓일까. 유속이 느리다. 부유물이 많이 떠 있다. 지저분하다. 그동안 비가 꽤 많이 온 듯한데 왜 강물이 맑지 않을까. 혹시 날씨가 너무 더워서 녹조현상이 생긴 것은 아닐까. 불광천을 거슬러 오르는 내내 강물 상태를 살폈다.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비가 오면 마르는 홍제천과 불광천 건천

홍제천과 불광천은 원래 건천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마른다. 한강 물을 전기로 끌어올려 하천에 흘려보내 사계절 내내 물이 흐른다. 불광천과 홍제천은 모두 아주 길고 긴 선형 분수가 만든 하천인 셈이다.

홍제천과 불광천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홍제천이 인공하천의 분위기이다. 산책로와 조경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홍제천을 따라 내부순환도로가 달린다. 불광천은 훨씬 자연적이다. 천변으로 꽤 넓은 습지가 펼쳐진다. 속살을 드러내지 않는 하늘도 보인다. 배롱나무꽃도 만개했다. 엉덩이를 쳐들고 먹이를 잡는 청둥오리의 모습이 귀엽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며 울창한 도시생태 하천을 걷는 즐거움이 보통이 아니다. 최적의 산책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불광천의 조류들.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름은 하천을 누비기 좋은 계절은 아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이 작열하는 태양과 맞서고 있다. 강변을 걷는 사람, 조깅하는 사람, 반려동물과 산책하는 사람, 자전거로 달리는 사람……. 그들 모두가 불광천을 만끽하고 있다. 더위와 맞서 싸우며 불광천을 즐기는 그들에게서 자연을 갈구하는 도시인의 모습을 본다. 기왕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힐 수 있다면, 물속에서 첨벙이며 물고기를 잡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잉어떼를 품은 불광천 삶의 터전

곳곳에 잉어 떼가 보인다. 얼마 전 서울에도 큰비가 한차례 지나갔다. 그런데 저 잉어는 어떻게 한강으로 떠내려가지 않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일까. 잉어는 귀소본능이 있으니 한강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일까. 궁금하면 못 참는다. 잉어생태에 관한 자료를 찾아봤다. 놀랍다. 목숨을 걸고 삶의 터전을 지킨다고 한다. 물이 불어나면, 잉어는 물살을 피해 하천가로 몸을 피한다. 그리고 수초 잎을 물고 거센 물살이 지나길 기다린다고 한다. 그리고 물살이 잔잔해지면 다시 하천을 거슬러 오른다고 한다. 엄청난 생명력이다.

월드컵 메타세쿼이아길.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길을 따라 걷다 보며 월드컵경기장이 나온다. 천변을 벗어나 월드컵경기장 방향으로 갈 생각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하늘로 치솟은 낙락장메(메타세쿼이아)’가 나타났다. 일명 월드컵 메타세쿼이아길이다. 불광천 천변 주거 지역의 차단막 역할을 하는 가로수길이다. 메타세쿼이아 키는 족히 20m가 될 듯하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겨우 두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 좁다. 그런 길이 거의 1km나 이어졌다. 숲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무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천상의 공원을 걷고 있는 느낌이다.

불광천의 벚꽃길...제주도산 왕벚나무

계획을 바꿨다. 기왕 불광천에 들어선 김에 복개천으로 바뀌는 은평구 응암역까지 걷기로 했다. 일명 불광천의 벚꽃길을 보기 위해서다. 지난봄에 차로 지나가면서 본 벚꽃 행렬을 잊을 수 없었다. ‘벚꽃 없는 벚꽃길은 어떤 느낌일까. 대림시장 주변인 듯하다. 벚꽃길이 시작됐다. 불광천의 벚꽃은 입체적일 듯하다. 둑 위의 대로변(불광천길)과 천변에 벚나무가 수 km 나 이어지고 있다. 자세히 보니 원산지가 제주도인 왕벚나무다. 내년에는 꼭 오겠다고 다짐했다.

지하철 6호선을 다시 타고 월드컵경기장에 내렸다. 2번 출구로 나와 이정표가 가르치는 대로 문화비축기지를 찾아갔다. 산업화 시대의 유산인 석유비축기지의 장소와 시설을 원형 그대로 살려 만든 문화복합시설이다. 석유비축기지에서는 5개의 탱크에 6,907의 석유를 저장했다. 서울시민 한 달간 사용량이다. 자동차 400만 대에 주유할 수 있는 분량이다. 이들 시설이 차지한 면적은 축구장 22(1422)라고 한다. 이 석유비축기지는 2002년 한일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폐쇄됐다.

2017년에 개장한 문화비축기지는 단순한 문화공간이 아니다. 탱크에 산업화의 엔진인 석유를 비축하듯 미래산업의 반도체인 문화를 축적하고 있다. 마포에 이런 곳이 있을 줄 전혀 몰랐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책, 오래된 미래가 생각난다.

문화비축기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문화비축기지, 미래산업의 반도체 문화 축적

문화비축기지에 들어섰다. 파란 잔디와 아름다운 조경 그리고 흰 공으로 꾸민 조형물, 다양한 형태의 휴식 공간이 펼쳐졌다. 이곳이 41년 동안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비밀 기지였다. 상상이 가지 않는다. 다만 매봉산 중턱에 자리한 대형 원통형 탱크가 이 장소 정체성을 알려줄 뿐이다. 녹슨 철판으로 이어진 원형 탱크에는 문화비축기지라는 흰 글자가 선명하다. 건물은 카페 라운지, 에코 라운지가 있는 휴게공간이다. 에코 라운지에서 넷플릭스가 고요한 바다를 촬영했다고 한다.

오는 날이 장날이다. 월요일은 전시 공간이 휴관한다. 전시는 고사하고 석유 탱크의 내부 모습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각각 공간은 충분히 둘러볼 가치가 있다. 공간의 외형에는 과거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거대한 철제 외벽을 지나는 산책길은 어쩌면 작업장으로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비밀 요새로 통하는 듯 은밀하다. 이 산책로는 뙤약볕도 숨어있다. 탱크와 연결된 낡은 철제 계단도 보존되어 있다. 철제 외벽에는 석유 저장 기록 계측기가 매달려 있다. 아마도 이 탱크 속은 비축된 미래를 만날 수 있는 공연장으로 꾸며져 있을 것이다.

지난 3년간 179종 프로그램 2,375회 공연을 열었다고 한다. 참가인원은 총 188,963명이란다. 어떻든 공간마다 과거와 미래 그리고 자연이 어우러져 있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수풀 사이에 숨겨진 듯한 시멘트 건축물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행은 흥미롭다. 보람도 있다.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특히 어느 지역의 대표적 명소를 만났을 때 그런 느낌은 더욱 강해진다. 불광천 천변의 문화비축기지를 마포의 명소 중 하나로 꼽고 싶다.

평화의공원, 별자리광장 그리고 난지호수

월드컵 평화의 공원.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문화비축기지를 나와 하늘공원 앞 사거리에서 대각선 방향에 월드컵공원이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평지를 4시간째 걷고 있다. 다리 아프다. 그렇다고 월드컵공원을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공원으로 들어서면서 이곳이 5개 월드컵공원 중 하나인 평화의공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공원은 역시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쉼터다.

평화의공원 안으로 들어오자 흐느적거리던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주차장을 지나자 눈앞에 일직선의 흰색 바닥 광장이 펼쳐졌다. 바닥 광장 한 가운데는 별자리 광장이 있다. 별자리광장에 바닥은 태양광 보도블록이다. 보도블록 태양광 셀 역할을 하는 셈이다. 보도블록이 태양을 받아 발전하는 전기를 바닥 조명으로 다시 활용한다. 조명이 들어오면 별자리 모양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난지 호수.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난지 비치.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별자리광장에서 왼편으로 돌아서자 잔잔한 난지호수가 드러났다. 호수에 비친 울창한 숲 실루엣이 펼쳐졌다. 연못과 어우러진 월드컵경기장의 모습이 더 아름답다. 누구나 시선을 빼앗길 것 같이 환상적이다. 난지호수에는 다른 호수에서 볼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ㄴㅈㅂㅊ이다. ‘난지비치의 초성만으로 이름 부친 모래 놀이터다. 마치 길게 펼쳐진 하얀 모래사장이 동해안 바다를 연상시킨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지는 빛이 위로와 힐링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