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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여류 추리작가 '권경희'의 추리퀴즈-당신의 추리력은?] 사이코 매직07

2024-07-12     권경희 작가

더 중요한 것은 사후의 문제였다. 내세에서 자신이 어떤 자리에 도달하게 될지는 현세에서 자신이 어떤 일을 행했는가에 달린 것이었다. 그 속에는 그 속에서의 깨달음이 있다. 그 깨달음을 넘본 사람을 도사(道士)라고 불렀던 것이다.

성철의 견해는 분명 초능력 연구가들 사이에서도 독특한 것이었다. 어려운 영어 나부랭이나 지껄이는 사람들은 그 뜻도 이해하지 못했고 그것을 우리것으로 만들지도 못했다.

그 까닭의 저변에는 이들 부류가 학문을 하는 데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었다. 말이 좋아 연구회지, 실상은 그들 자신이 연구대상인 셈이었으니. 그 중에 성철의 경우는 좀 유별났다.

그의 특기는 텔레파시(Telepathy)였으나 그렇게 우수한 능력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일반적인 다른 회원과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그가 회장의 자리에 오르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사연이 꼬여 있었다. 이들이 재야 학술 단체로 있기는 하지만 회원 수는 300여 명이 넘었다. 그 정도면 단체로는 웬만한 크기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모임에 그 숫자가 다 모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크기가 그쯤 되다보니 그 중에는 초능력이라고는 손톱끝만큼도 없는 사람들도 당연히 존재했다. 그런 이들은 초능력을 길러 보고자 하는 부류와 학문적으로 연구해 보고자 하는 부류의 두 종류가 있었다.

성철은 그들 모두를 포용하여 단체를 이끌어가야 할 의무가 있었다. 초능력자라고 해도 그 능력이 대단한 것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자격지심을 지니는 이들도 있었으며 그들은 단순히 연구만을 하는 이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연구자들을 백안시하기 일쑤였다.
그런 태도는 당연히 역으로 돌아와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대단치도 않은 것들’'라는 반응이 나오게 마련이었다.

성철이 골치를 썩이는 문제 역시 바로 그 점이었다. 성철의 전임이었던 이태호 회장 때에는 이런 일로 골치를 썩이는 일은 없었다.
이태호 회장. 그는 한국 초능력의 짧은 역사에 가장 뛰어난 초능력자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는 전세계에도 몇 되지 않는 특수 초능력자로 생각되었다.

특수 초능력이란 우량성 초능력이라고도 부르는데 쉽게 말하면 '프라나'라고 불리우는 기(氣)를 자신의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단계를 말한다.
그의 장기는 염력(念力)이었다. 물건을 휘게 하거나 공중으로 끌어올리는 일 따위가 그의 초능력이었다.

그는 초능력 실험의 하나인 주사위와 숫자 맞추기에서 백 퍼센트 적중의 놀라운 힘을 보였다. 주사위 숫자 맞추기란 주사위를 실험자가 던지기 전에 그 숫자를 말하고 피실험자의 염력으로 주사위를 숫자에서 멈추게  하는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이태호는 화려한 각광을 받았고 초능력계에서 떠오르는 샛별이 되었다. 그는 이후에도 재떨이를 허공으로 들어올리거나 탁자를 들썩이게 만드는 등 놀라운 능력을 보여서 어렵잖게 회장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회장이 되었을 때 그의 나이 35세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미 50이 넘어선 '원로'들의 불만도 대단했다. 그러나 실력이 있는자가 대표의 자리를 맡아야 획기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여론에 원로들은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선출된 이태호 회장 취임 초기에는 초능력자와 비초능력자 사이에 갈등이 없었다. 아니, 갈등이 없었다기 보다는 이태호 회장의 능력 앞에  비초능력자들이 모두 감복했다는 것이 바른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이태호 회장의 권위에 금이 가는 일이 생기면서 '한국초능력자연구회'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의 명성이 미국으로까지 퍼져나감으로써 발생했다.

성철은 머리를 흔들고 그 기억을 떨쳐버리고자 했다. 그 문제만 없었더라면 지금 자기는 조용히 자신의 초능력을 기르며 내세에서의 좀더 나은 자신을 위해 수양을 닦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나 속진에 물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옛 고승이나 도사들은 명산의 암자나 동굴 속에서 도를 닦았던 모양이라고 성철은 생각했다.

지금 이태호 회장은 고문의 위치에 있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하는 초능력자 집단과 조용석이라는 원로 초능력 연구가를 중심으로 하는 비초능력자 집단이 으르렁대고 있는 실정이었고, 성철은 중도적인 인물이라는 평을 받아 회장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성철은 세력균형 속에 간신히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자신을 쓰디쓴 웃음으로 비웃었다.
“옛일에 연연하시나요?”
사무실 문을 빼곡이 여는데 벌써 낭랑한 아가씨의 목소리가 울려펴졌다.
“허허, 지아 양이 왔구먼.”

성철은 문을 미처 다 밀지도 않고 얼굴에 하나 가득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아, 재미없어. 또 내가 여기 오는 것을 미리 아셨군요.”
“그거야 어디 내가 알려고 그래서 안 건가? 지아 양의 기가 너무 세서 자연스레 노출이 된 거지.”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