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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 2000명 증원이 의료개혁?… “국민 우롱”

‘의대 2000명 증원, 필수의료 패키지’… 의료 붕괴 가능한 사안 정부, 의료 현장 최전선 의사들 목소리 외면 ‘일방적 밀어붙이기’ 의료계, 현 상황 두고 “하루빨리 끝나길 바라”, “조건없는 대화 필요” 정부의 이면적 행태가 의·정 갈등 심화 中… 박민수 복지부 차관 비판

2024-06-04     박정우 기자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 [대한의사협회]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지난 5월30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 증원이 최종 확정됐다. 1998년 제주대 의대 신설 이후 27년 만이다. 2018년, 2020년에도 정부의 의대 증원 시도가 있었지만 의료계 반발로 무산됐다. 한편 의대 증원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은 더욱 깊어지는 상황. 정부는 “의료계 결단 촉구”를 외치고, 의료계는 “백지화된 원점에서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의료계의 ‘의사 총파업’까지 전망하는 가운데, 현 의·정 갈등 관련 주요 사항에 대한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의 의견을 들어봤다.

아래는 임현택 의협 회장의 일문일답.
 
- ‘의대증원 백지화’를 촉구하는 의협의 근거는 무엇인가.

▲ ‘의대증원 백지화’라는 말의 의미가 와전된 상황이다. 정부 측의 2000명 주장, 의료계의 0명 주장, 서로의 주장들을 백지화하고 완전하게 원점인 ‘제로베이스’ 상태에서의 대화를 원한다는 의미다. 의료계가 주장하는 것이 ‘증원 0명’이라는 의미로 비추어지는 것에 대해 심히 안타까울 따름이다. 의료계가 전면 백지화를 주장하는 이유는 의대 2000명 증원과 소위 말하는 ‘필수의료 패키지’, 이 두 가지가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을 철저히 망가뜨릴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정부는 의료계의 대안을 왜 수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 정부는 의대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의 실행 명분으로 지역·필수의료 살리기를 들고 나왔는데 그렇다면 의료 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의사들의 목소리가 필수적으로 반영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정부는 의료계의 입장을 반영하기는커녕 2000명 증원에 대한 적절한 근거와 의료계와의 논의 없이 빈약한 근거를 토대로 2000명 증원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이다. 

의료계는 현 상황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있으며, 정부와의 조건 없는 대화를 지속적으로 원한다고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쪽은 오히려 정부 측이다. 대화가 열려있다고 말하면서 2000명 증원이라는 조건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정부 측 입장이다. 의료계는 조건 없이 대화를 시작하고자 하는데 정부는 이미 이번 항고심으로 인해 증원의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는 것으로 스스로 보여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대정원 증원 2000명이라는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더 이상 주변 인사들이 제공하는 잘못된 정보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 당사자인 의료계와 ‘조건없는’ 대화에 응해야 한다.

- ‘의대증원’ 외 다른 대안이 있다면.

▲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서 의료계는 오랜 시간 전부터 대책을 제시해 왔다. ‘의료전달체계 확립’ 없이는 죽어가는 지역·필수의료를 살릴 수 없다. 소위 ‘내외산소’라 불리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와 같은 필수 의료과 의료진들에 대한 처우개선과 수가 현실화를 통한 보상체계 마련, 의료인에 대한 사법리스크 완화, 1, 2, 3차 의료기관에 대한 정상적인 의료전달체계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불거지는 ‘응급실 뺑뺑이’가 정말로 응급실 의사가 부족해서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응급차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응급이 아닌 경증환자들이 응급실에 방문하는 비율이 높다. 응급실에 경증환자들로 가득하다면 정말로 ‘응급’상황인 환자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응급환자를 분류하여 상황에 맞도록 의료기관에 후송하는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갖춰지지 않는다면 응급실 의사가 아무리 늘더라도 중증환자들이 응급실을 찾아 맴돌 수밖에 없다.

- 의료인 사법리스크 완화에 대해 부연한다면.

▲ 최근 대법원은 응급의학과 전공의에 대해 적절한 진료를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판결했다. 해당 전공의는 1년 차 전공의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판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지 못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이는 의사들이 응급실을 기피하고 그나마 남아있던 응급실 의료진들이 소극적으로 진료를 하는 현상을 야기했다.

이는 결국 필수의료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다. 실제로 이대목동병원 소아과 사건으로 인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나도 소아청소년과 의사이지만 감히 후배 의사들에게 소아과 의사가 돼달라고 쉽사리 말할 수 없는 절망적인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의료진에 대한 과도한 사법리스크 해소는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 의·정 갈등이 봉합되지 않는 구체적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정부의 이면적 행태가 의·정 갈등을 심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민수 차관은 지난 수개월 간 의료계의 직업적 자존심을 짓밟는 망언들을 셀 수 없이 해 왔다. 언론을 통해서는 조건 없이 대화하자면서 뒤에서는 전공의들과 의료계 지도자들을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압수수색을 서슴지 않았다. 

자유국가에서 자발적으로 사직을 선택한 전공의들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법률지원을 한 것이 수차례의 경찰 조사와 압수수색을 당해야 할 만큼의 일인지 되묻고 싶다. 테이블에 칼을 올려두고 대화하자고 하는 이런 정부와 보건복지부의 몰상식한 태도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어떻게 그런 대화가 진정한 대화라고 할 수 있겠는가?

- 최근 박민수 복지부 차관을 고발했는데 사유는.

▲ 박민수 차관은 이번 의료농단 사태의 책임자로서 의료계로부터 많은 고소·고발을 당했고 최근에는 의대정원 집행정지신청 재판과정에서 허위사실 유포, 공무집행 방해 등으로 고발을 당했다. 지난 3월19일에는 조규홍 복지부장관과 함께 박민수 차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직접 공수처에 고발했다. 

근거 없는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을 강행하기 위해 그들의 직권을 남용하여 전공의들의 휴식권, 사직권, 모성을 보호받을 권리, 전공의가 아닌 일반의로 일할 권리 등 전공의들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방해했다. 전공의들의 권리가 침해받는 것을 선배 의사로서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기에 그들이 법의 엄정한 심판을 받도록 고발했다.

- 현 상황에서 정부에게 촉구하는 바가 있다면.

▲ 정부는 하루빨리 고통받는 국민과 환자들을 위해 ‘2000명’이라는 조건을 내세우지 말고 대화의 자리로 나와주길 바란다. 의료계와 정부의 조건 없는 대화만이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 대한의사협회의 향후 활동 계획은.

▲ 대한의사협회는 ‘회원 권익 보호’와 ‘국민의 건강과 생명 수호’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따라서 14만 의사를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의 수장으로서, 현 사태 해결을 통해 무너지는 의료체계를 바로잡아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수호하고 회원들의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 의료계에 전하고 싶은 바는.

▲ 지금 정부의 근거 없는 의대정원 증원으로 인해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붕괴 직전인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다. 전공의들과 의대생, 교수님들께서 현 사태의 최전선에서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고, 대한의사협회 역시 현 사태 해결을 위해 대내외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 동료 선·후배 의사들, 그리고 앞으로 의료계를 이끌어 갈 의대생들을 보호하고 보다 나은 의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14만 회원들이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한의사협회를 믿고 따라와 주신다면 현 상황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끝으로 의료대란과 의·정 갈등 상황을 지켜보는 국민들께 한 말씀.

▲ 정부는 2000명 증원으로 의료개혁이 가능한 것처럼 국민들을 속이고 우롱하는 중이다. 의대정원 증원은 필수의료가 살아나는 것이 아닌 반대로 의사들의 희생으로 그나마 지탱해온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숫자에 대한 근거도 없을뿐더러 단순히 정원만 늘려서 늘어난 의대생들이 자발적으로 지역으로, 필수과로 갈 것이라 안일하게 생각하는 정부 정책에 의료계뿐 아니라 국민들이 나서서 막아 주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