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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연이은 ‘거부권(재의요구권)’… 헌법적 한계일까?

입법조사처 “헌법, (대통령의) 거부권 관련 ‘구체적’ 명시 없어” 차진하 교수 “거부권, 사법 심사제도 아니기에 사유 제한 無”

2024-05-28     박정우 기자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연이은 거부권을 두고 야권의 날선 비판 공세가 이어진다. 더불어민주당은 ‘탄핵’을 언급했고, 국민의힘은 이재명 민주당 당대표의 사법리스크 모면책이라고 맞받아쳤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두고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보고서를 통해 “헌법에 거부권 행사 사유에 대한 정확한 명시가 없다”라며 법률적 한계를 지적한 상황. 반면 차진아 고려대 법학과 교수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두고 헌법에 위반된다고 지적하는 것은 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라고 질타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채 상병 특검법’을 두고 취임 후 열 번째 거부권을 행사했다. 범야권 정당들은 윤 대통령의 탄핵을 언급하며 비판 수위를 끌어올렸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 모면책으로 탄핵정국을 조성한다며 대응했다.

민주당은 지난 23일 충남 예산에서 열린 22대 국회 당선인 워크숍에서 채 상병 특검법 관철 등의 내용이 담긴 결의문을 채택했다. 결의문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을 비롯해 개혁법안들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며, 당면한 해병대원 특검법 관철을 위해 역량을 집중한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정청래 민주당 수석 최고위원은 “탄핵 열차가 시동을 걸고 있다”라며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다. 그럼 특검 거부권을 행사하는 자는 더 큰 범인인가”라고 윤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해 거부권 행사를 비판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에 대응해 “이재명 대표와 야당은 정녕 채 상병 사건을 빌미로 탄핵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냐”라며 “한 젊은 병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오로지 정치공세용 소재로 이용하는 것을 그만하시라”라고 말했다.

잇따른 재의요구권 ‘위헌’ 발언한 조국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윤 대통령의 연이은 거부권 행사가 ‘위헌적’이라고 지적했다. 조 대표는 지난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은 탄핵소추 사유가 된다”라며 “의견을 내는 법률가, 언론인들이 있다”라고 적었다.

이어 “윤석열처럼 거부권을 남발하는 대통령은 이승만밖에 없었고, 이를 사유로 탄핵소추도 없었기에 헌법재판소 결정도 없다”라면서도 “법조인이라면 거의 다 읽었을 한국 헌법학계의 거두 故 권영성 교수님의 ‘헌법학 원론’ 988쪽을 보라”라고 제시했다.

조 대표는 해당 페이지의 내용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정당한 이유가 있고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경우여야 한다. 정당한 이유가 없는 법률안 거부권 남용은 탄핵소추의 사유가 된다”를 발췌하며 “논문은 안·못 읽더라도 교과서 정도는 읽고 말하라”라고 지적했다.

그의 지적은 대통령실이 채 해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에 연루됐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의 거부권이 정당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이를 두고 “자기 자신의 범죄 혐의를 밝히기 위한 법안을 거부한다는 것은 전형적으로 이해 충돌”이라고 밝혔다.

입법조사처 “헌법, 거부권 사유 구체적 명시 없어”

국회입법조사처(조사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이 매우 드물게 행사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대통령의 빈번한 거부권 행사로 그 배경과 적절성 및 헌법적 한계에 대한 관심이 높다.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돼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하고,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는 대통령이 15일 이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헌법에서는 ‘이의가 있을 때’라고 정하고 있지만, 그 ‘이의’의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거부권의 헌법제도상 의의는 대체로 국회의 경솔한 혹은 하자 있는 입법을 절차적으로 통제하는 기능과 대통령이 국회를 견제해 국정의 균형을 도모하는 기능이 언급된다. 구체적으로는 헌법에 위반되는 법률안, 집행이 불가능한 법률안, 국익에 위반되는 법률안, 권력 분립에 위배돼 행정권을 불합리하게 제약하고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는 정쟁적 법률안 등이 있다.

조사처는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이 대통령의 사적인 이해와 충돌한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헌법상 용인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이해충돌이란 ‘공무원의 공적 의무와 사적 이익 간의 충돌로서, 공적 임무와 책임의 수행에 부적절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적 이해관계가 있는 이익과의 충돌’을 의미한다.

끝으로 “헌법은 매우 추상적인 언어로 쓰여 있다”라며 “법률안 거부권의 헌법적 의의와 명시적·내재적 한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입헌주의와 의회주의가 모두 존중되는 헌정운영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전문가 “헌법 위반? 제도 이해 부족한 것”

지난 24일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 거부권이 법률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 선을 그었다. 차 교수는 “법률안 거부권은 사법권이 아닌 입법부 다수 횡포를 막기 위한 수단이다”라며 “정치적인 사유로도 행사가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그는 “거부권을 두고 헌법에 위반되는 것을 지적하는 것 자체가 이 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이라며 “행정부가 판단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법률이라 생각되면 정책적인 이유로 거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거부권은 사법적인 심사 제도가 아니기에 사유에 제한이 없고 구체적으로 설명할 이유가 없다”라며 “정책적 타당성의 부족이나 국민적 공감대가 부족한 정도의 사유로도 행사가 가능하다”라고 덧붙였다.

대통령실 “헌법 부정, 거부권 행사할 수밖에”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정진적 대통령 비서실장은 “헌법 수호의 책무를 지닌 대통령으로서 행정부의 권한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입법에 대해 국회의 재의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이어 “오히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에 해당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채 상병 특검법’을 두고는 “특검 제도는 수사기관의 수사가 미진하거나 수사의 공정성 또는 객관성이 의심되는 경우에만 보충적·예외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제도다. 현재 경찰과 공수처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