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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여류 추리작가 '권경희'의 추리퀴즈-당신의 추리력은?] 포도대장의 애첩3

2024-04-26     권경희 작가

옥채유는 피가 끓어 올랐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붙잡는 나졸을 한 팔에 내동댕이치고 환도까지 빼앗은 뒤 대문을 들어섰다. 포도대장이 아니라 상감이라도 겁날 것이 없었다.

당장에 목을 잘라 버리려는 기세였다. 옥채유는 포도대장이 거처하는 섬돌 밑에 가서 섰다. 방안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아내의 말소리요 하나는 석영서대장의 말소리였다. 옥채유는  문 앞에 선채 분노를 잠시 추스르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황송하옵니다. 소인 옥채유 옳습니다. 나리, 잠깐만 문을 열어 주십시오!” 
방안에서는 말이 뚝 그치고 문이 열리더니 석영서 대장이 목을 내 밀었다. 
“음 채유냐? 저쪽 방으로 들어라!” 

그러나 옥채유는 꼼짝도 안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리 나와서 나와 칼을 맞잡아 주십시오. 남의 아내를 유린하는 것이 이 나라 포도대장의 법도입니까?” 

옥채유가 칼을 쑥 뽑아 석영서를 겨누었다.  
“뭣이! 이 천하에 고얀 놈! 네놈이 감히 그 소리를 목구멍으로 내 뱉을 놈이냐! 이놈!” 
석영서는 와르르 문을 열어 제치고 마루 위로 뛰어나왔다. 옥채유는 여전히 꼼짝 않고 그를 노려보며 냉랭하게 말을 내 뱉었다. 

“힘에는 힘으로 대해야 하는가 하옵니다. 어서 칼을 잡으시고 소인에게 피를 보이든지 저를 단칼에 베이든지 하십시오. 당당히 남편이 살아있는 계집을 유인하는 나으리! 어서 칼을 잡으시오!”

석 영서는 마루에서 발을 구르며 욕을 퍼부었다.
“야이! 우라질 놈! 천대만손을 멸할 놈! 야아, 게 아무도 없느냐! 이놈을 당장 묶어서 목을 날려라. 상관에게 갖은 무례를 다한 우라질 놈!” 

옥채유는 재빨리 칼을 들어 석영서의 가슴팍을 향해 던졌다. 그러나 그 칼은 기둥에 맞고 튕겨 나와 댓돌에 떨어져 부러져 버렸다. 칼이 떨어지자 미리 몰려와 있던 나졸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옥채유를 묶고 말았다.  

“그놈을 형틀에 묶지 마라. 형틀은 신성한 것이다. 뒷산 고목에 거꾸로 매달고 목을 잘라라. 그리고 그 피묻은 칼을 나한테 받쳐라!” 
석영서가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쓸개 빠진 포도대장 나으리, 이것이 수천 나졸에게 보이는 모범행위입니까? 나는 우라질 놈이지만 나리는 급살(急煞)맞을 벼슬아치요. 그리고 해월이 이년아 듣거라! 남편을 버린 간부, 너는 내가 죽어가도 귀신이 되어 반드시 너를 잡아 갈 것이다!” 
옥채유는 이렇게 소리치며 끌려갔다. 그리고 얼마 후에 나졸은 피 묻은 칼을 석영서에게 받쳤다. 

이렇게 죽은 옥채유였다. 
그런데 지금 그 귀신이 바로 여기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더구나 4년이 지난 오늘날에. 
“에잇! 이 귀신! 내 칼을 받아라.”
지성천은 점차 자신감이 붙었다. 

귀신인지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흑장 괴인은 힘은 세었지만 무술은 그다지 정교하지 못했다. 괴인은 세가 불리함을 느끼고는 오른쪽으로 난 지하도로 도망쳐 들어갔다. 지성천도 급히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는 창을 휘 둘러 괴물의 어깨쭉지를 힘껏 내리 찔렀다. 그런데 괴인은 홀연히 정말 귀신처럼 스르르 없어져 버렸다. 

지성천은 그제야 정말 귀신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지성천이 뒤로 돌아 서려는 순간에 뒤쪽에서 비치던 모닥불이 꺼져버리고 굴속은 깜깜해졌다. 지성천은 지하도 사방을 둘러보다가 희미한 불빛이 한쪽에서 비치는 것을 발견했다. 지성천은 얼른 그리고 가 보았다.  

그곳은 위로 올라가는 경사진 굴로 되어 있었다. 이런 곳이 있는 줄은 성천은 꿈에도 몰랐다. 지성천이 그곳으로 가까이 갈수록 어디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먼 곳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발밑이 뭉클하고 무엇인가가 밟혔다. 깜짝 놀라 뒤로 다시 한걸음 물러섰다.

쓰러져 있는 것은 사람인 듯 싶었다. 지성천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창으로 슬쩍 찔러보았다.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지성천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허옇게 보이는 것은 벌거벗은 여자시체였다. 성천은 다시 한 번 놀라 물러섰다. 
지성천은 부싯돌을 꺼내 부들부들 떨며 불을 붙였다. 불을 들고 다가가 보니 그것은 확실히 벌거벗은 여자의 시체로 이집 몸종 소사였다. 가슴에 칼을 맞았는지 시뻘건 피가 고여 있었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