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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에 의료계 극단 분열...尹 거부권 딜레마 속 여의도는 폭풍전야

의료계 ‘간호사 직역침탈’ 쟁점에 사생결단 대치...尹의 해법은

2023-05-04     정두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야당이 단독 처리한 간호법 제정 여부를 놓고 의료계 갈등 양상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간호법은 간호사 처우 개선과 고유 업무영역 명확화 등을 골자로 현행 의료법에서 분리된 독립 법안으로 고안됐다. 그러나 의사,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임상병리사 등 13개에 이르는 타 보건의료단체들은 의료생태계 혼란과 직역 침탈 등을 야기할 수 있다며 간호법 제정을 극구 반대하고 있다. 특히 간호법(안) 1조에 명시된 ‘지역사회’가 포괄적 개념이다 보니 법률 유권해석상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에 의사‧조무사들은 지난 3일 부분 파업에 돌입, 간호법 제정 최종 관문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강력 촉구하며 의료연대 잠정 총파업까지 예고한 상태다. 간호업계도 지난 2005년부터 입법이 추진된 간호법이 오랜 숙원인 만큼,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으로선 쟁점 법안 처리에 고심이 깊다. 직군별 주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데다, 총선 민심이 출렁일 수 있어 신중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당정 권유대로 재의요구권을 발동하게 되면 여의도 국회 또한 거대 정쟁 기류에 휩쓸릴 전망이다.

의료계가 둘로 쪼개졌다.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여야 합의가 배제된 간호법 제정안이 야당 단독으로 처리된 여파다. 국민의힘은 법안 각론에서 사전 협의가 불발되자 국회 표결을 전격 보이콧했다.  

의사,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 응급구조사 등 13개 의료 직군이 연대해 보건복지의료연대 기치 하에 간호법 제정 반대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고, 간호법 제정을 지지하는 간호사들은 대한간호협회를 중심으로 그 반대편에 섰다. 앞서 국회 처리 전 단계에서 논란의 ‘지역사회’ 문구 삭제, 간호조무사 학력 제한 조정 등을 골자로 한 당정 절충안이 제시됐으나, 이해당사자 간 합의가 무산되면서 직역 갈등의 골이 깊어진 상황.

한편 간호법 찬반 진영 각각의 의견과 별개로, 국민 건강과 의료계 생태가 직결되는 법안이 사회‧정치적 합의가 걸러진 채 단독 처리되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한 의문은 엄존한다. 의료계 파업에 따른 의료 공백과 국민 불안도 다수당의 일방통행 입법에 무력한 입법문화가 낳은 부작용이라는 지적이다. 졸속 입법에 기인한 사회‧경제적 잠정 손실과 갈등은 오롯이 국민의 몫이라는 점에서 회의적이라는 쓴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뉴시스]

논란의 간호법, 13개 직군 반대 사유는

간호법 최대 쟁점은 제정안 1조‧5조다. 간호법 제정안 1조에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는다’라고 돼 있다. 의사 대변 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지역사회 문구가 포함된 해당 조항이 향후 간호사의 독자 의료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해석한다. 지역사회라는 단어가 포괄적 의미를 담고 있어 법률 해석 자체가 모호한 데다, 추가 법 개정이나 행정부 시행령이 이뤄질 경우 현행 의료법에 따라 의사 처방 하에 이뤄졌던 간호 업무들이 독립 시행될 수 있어 과잉입법이라는 지적이다.

김경태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부대변인은 “‘간호돌봄센터’ 등은 단독 개원을 하기 위한 포석”이라며 “기존에 할 수 없었던 의료·간호 행위가 가능하도록 법·제도를 바꿔 본인들이 돌봄 사업의 핵심으로 나서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간호사 고유 업무가 각종 개인사업으로 파생될 수 있으며, 법안에 포함된 ‘지역사회’ 문구가 이를 위한 법률적 포석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아울러 응급구조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요양보호사 등 소수 직군도 구체적 간호법 반대 사유에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지역사회’ 문구에 대한 의구심은 공통분모다. 업무 범위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상대적 다수 집단인 간호사들이 지역사회로 진출하게 되면 생존권에 위협을 받게 된다는 논리다. 

강용수 대한응급구조사협회장과 강용수 대한응급구조사협회장은 공식 성명을 내고 “추후 간호법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으로 응급간호사 등이 등장해 응급구조사 업무를 할 수 있게 될 것이 우려된다”며 “인원이 많은 간호사들이 지역사회로 나오면 소수 직역은 감당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간호법 5조에 명시된 간호조무사 자격인정 요건도 간호조무사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지점이다. 이는 현행 의료법 제80조1항을 그대로 따온 것으로, 해당 조항에 따르면 간호조무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국시를 보려면 ‘간호 관련 특성화고를 졸업’하거나 ‘학원에서 간호조무사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이에 간호조무업계는 의료법과 별개인 간호법에 이 같은 조항을 가져온 것은 조무사를 간호사의 하위 집단으로 명문화하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보고 있다. 업계 처우 개선을 요구하면서 업무 영역을 공유하고 있는 동업 직군에 대한 학력 제한을 법문으로 재명시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간호법에 의원급 이상 의료기관을 제외한 곳에서의 간호조무사 업무를 ‘간호사 보조’로 명시한 점도 간호조무업계가 목소리를 높이는 부분이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 정동환 기획실장은 “간호법은 간호조무사의 ‘고졸 이하’ 학력을 못 박고, 의료기관 외 지역사회 내 각종 시설에서 간호사가 없으면 간호조무사를 고용할 수 없도록 한 법령”이라며 “지역사회 조항을 삭제하던지, 지역사회 업무에서 조무사의 보조 대상에 의사·치과의사·한의사를 포함시켜야 맞다”고 성토했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들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간호법 제정 촉구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간호사 “단독 개원, 직역 침탈은 기우(杞憂)”

이에 대해 간호계는 단독 개원, 업무영역 침해 주장은 거짓이라며 간호법은 간호사 처우 개선과 업무 명확화를 위한 정당법이라고 반론을 펴고 있다. 간호법이 별도로 제정되더라도 제정안의 골격은 간호사의 업무 등을 규정한 현행 의료법에 근거한 만큼, 단독 개원이나 직역 침해가 있을 수 없다는 것.  

대한간호협회는 “간호법안 어디에도 간호사 혼자서 (지역사회) 돌봄을 도맡겠다는 조문은 없다”며 “간호법은 다른 직역의 영역을 침해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13개 의료단체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이들에 따르면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에 포함된 간호 관련 조항들을 독립법으로 분리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근무환경이 열악한 간호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의료 사각지대로 꼽히는 지역사회에서의 의료 행위 법제화와 암암리에 이뤄졌던 불법 대리의료 근절을 도모하자는 취지다. 

▲처우개선 지침 제정 ▲간호사 업무 명확화 ▲정기적 간호종합계획 수립과 실태조사 ▲의료 질 개선을 위한 간호사 추가 확보와 배치 ▲간호사 인권침해 방지 등이 간호법의 요체라는 것이다.

특히 쟁점 키워드인 ‘지역사회’ 문구에 대해선 고령화 시대를 맞아 지역 내 돌봄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이지, 간호돌봄센터 등 독자적 사업구조 확보 포석이라는 우려는 과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협회는 관할 정부부처인 보건복지부가 간호법을 둘러싼 오해를 풀기는커녕 ‘직역갈등은 안 된다’는 모호한 태도로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간호사 출신인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05회국회(임시회) 제5차 본회의에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과 간호법에 대한 투표를 하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 찬반토론이 시작될 무렵 회의장 밖으로 나섰다. 2023.04.27. [뉴시스]

‘간호법’ 재가든 거부권이든 여진 불가피...尹의 결정은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간호법은 현재 윤 대통령에게 공이 넘어간 상황이다. 여당인 국민의힘과 정부는 대통령 재의요구권 행사를 권유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가운데, 용산 대통령실의 결정만 남은 것. 

간호법을 반대하는 13개 보건의료단체들은 윤 대통령이 간호법을 재가할 경우 연대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대한간호협회를 주축으로 한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도 총력 투쟁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태다. 결국 윤 대통령으로선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파장은 불가피한 셈이다. 

이렇듯 간호법을 놓고 의료계 찬반 여론이 첨예하다 보니 윤 대통령은 방미 이후 4일 현재까지 거부권 행사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의료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거부권 의사결정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총선 여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윤 대통령의 정무적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다. 양곡관리법에 이어 2호 거부권을 행사하게 되면 불통(不通) 이미지가 누적되고, 반대로 제정안을 가결 처리하면 간호법 단독 처리를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이 정국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다. 게다가 간호법 외에도 야당이 방송법,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등 쟁점법안에 대한 릴레이 입법을 예고한 상황에서 대통령실 차원의 후속 대응 노선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유력시된다. 여당인 국민의힘과 정부도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권유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쟁점요소가 산재한 간호법을 국회로 돌려보내 의료직군 간 절충과 합의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여야가 간호법을 재협의해 간호법 새 제정안을 내도록 하겠다는 것.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본지에 “대통령실로선 의료계 찬반 입장이 뚜렷한 상황에서 결정이 쉽지 않은 사안인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지금으로선 (의료)업계 대란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막고, 상호합의 하에 새 제정안을 도출하는 것이 우선이다. 당에서도 이러한 의견을 대통령실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한편 간호법 제정안은 지난 4일 정부로 이송됐다. 윤 대통령은 이로부터 공휴일을 뺀 15일 이내에 간호법을 공포하거나 재의요구권을 행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