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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이상우의 정치 추리 소설-악녀시대] 35

2021-10-22     이상우 작가

신지혜의 걱정거리를 곽진이 덜어주기 위해 조언을 해주었다.
‘그렇다. 미리 예고를 하는 일이다. 누군가가 그를 죽이려고 하니 감시를 해야 한다고 한다면⋯’

신지혜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추 경감을 찾아갔었다. 경찰관이 감시를 한다면 섣불리 정필대를 누가 죽이지 못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자기가 경찰관이 미행하고 있는 틈에 들어가 그를 없앤다면 이건 얼마나 멋있는 복수인가를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야. 복수할 기회를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어”

의견을 낼 때와는 달리 곽진이 신지혜의 뜻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신지혜는 추경감으로부터 감시 승낙을 받아낸 뒤였기 때문이다.
신지혜는 D데이를 마침내 정했다. 정필대와 차주호가 자하문장에서 만난다는 것을 알아냈던 것이다.

그들은 부부로 가장할 것을 모의했었다.
신지혜는 임시로 얻어 있는 아파트 주변을 눈여겨보았다. 이웃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수집해 두었었다. 그녀가 정보를 얻는 것은 주로 미리 친해둔 경비원들 한테서였다.

그들 아파트 아래층에 있는 운전사 부부가 자기 택시를 세차할 때는 부부가 함께 아파트 마당에 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그 틈에 그 집에 침입, 주민등록증을 훔쳐냈다. 세차를 하러 나갈 때는 운동복 같은 허드레옷을 입고 나가기 때문에 남자의 외출복을 뒤져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장을 빼냈다. 거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그녀의 핸드백 속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빼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들은 사진을 바꿔 붙이고 김형진과 이혜원으로 가장했다.
곽진이 먼저 그 여관에 들어갔다. 그는 방을 잡은 뒤 다시 나와 자기가 있는 방의 호수를 신지혜에게 알려 주고 들어갔다.

신지혜는 여관 밖에서  서성이다가 정필대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슬쩍 뒤따라 들어갔다. 정필대가 어느 방에 들어가는가를 알기 위해서였다.
지혜는 정필대가 들어가는 방을 확인한 뒤 곽진이 들어 있는 방으로 갔다.
“왔어요. 준비하고 있어요.”

신지혜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핸드백에 든 권총을 다시 한번 만져 보았다. 그녀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흥분되어 자기의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곽진이 옛날 친구를 통해 남대문 암시장에서 구입한 권총이었다. 소유 경로를 캐내지 못하게 권총의 넘버를 미리 줄로 지워 버렸었다.

지혜는 노크도 하지 않고 정필대가 있는 방의 도어를 왈칵 열고 들어갔다. 방바닥에 벌렁 누워 담배를 피우고 있던 정필대가 깜작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았다.
“놀랐죠? 저예요. 신지혜.”
지혜는 방긋이 웃으며 정필대 곁에 앉았다. 그녀는 이 남자를 가장 망신스럽게 죽이는 방법이 무엇인가가 얼른 머리에 떠올랐다.

“어? 지혜?”
정필대는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서 가지고 놀다가 버리고 온 여자가 여기 서울의 허름한 여관방에 갑자기 나타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해요. 그냥 정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뒤를 밟아 다녔을 뿐이에요. 여기서 딴 여자를 만나자는 것은 아니죠?”
“미국서 언제 왔지? 그렇지 않아도 말이야⋯”

정필대는 당황해서 얼굴이 상기되었다. 심장에 털이 난 능구렁이도 이럴 때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구나 하고 생각하자 신지헤는 저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나 미스터 정한테 부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다만 당신 품에 한 번만 더 안기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당신만큼 힘 좋은 남자가 이 세상에 어디 또 있겠어요? 미스터 정은 나와의 잠자리가 좋지 않았나요?”

신지혜는 숨돌릴 여유도 주지 않고 그에게 키스를 퍼붓고 끌어안았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정필대는 신지혜가 하자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지혜, 저어⋯ 여기선 좀⋯ 우리 있다가 호텔에서 다시 만나 이야기하지. 지금은 좀⋯”
“아이. 이러지 말아요. 미스터 정이 미국을 떠나자마자 난 결심한 것이 있어요.”
“결심? 무슨⋯”

정필대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미스터 정을 놓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미스터 정은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난 유 곁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 했어요. 그런 결심을 하고 나니까 꼭 한 번만 유와 잠자리를 같이하고 싶었어요. 우리들 이별의 격식이라고나 할까? 당신의 심벌을 내 몸속에서 영원히 느끼고 싶었어요.”

“아니 그렇다면⋯”
정필대는 반신반의하는 투로 신지혜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그녀가 하는대로 몸을 맡길 태세였다.
지혜는 그가 입을 열지 못하게 하고 그의 옷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우선 급한 일이 있으니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는 듯한 공격법이었다.

신지혜는 곧 자기 블라우스를 벗어 던졌다. 하얀 어깨가 들어났다. 이어 브래지어 호크를 풀었다. 봉긋한 유두가 정필대의 시선을 자극했다. 그녀는 정필대의 손을 끌어다가 자기의 젖가슴에 가져다 대었다.
“음⋯”
정필대의 손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신지혜가 이번에는 스커트를 벗어 던졌다. 그리고 다시 정필대의 손을 끌어다가 그녀의 팬티 속으로 집어 넣었다. 

“지혜⋯”
당황하던 정필대는 곧 불 같은 여인 신지혜의 요구대로 따라갔다. 바지는 제 손으로 벗어 버렸다. 완전히 발가벗은 정필대의 손이 지혜의 젖무덤을 움켜쥐었다. 신지혜의 팬티를 거칠게 벗겨 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달아오른 그는 지혜의 입술을 물고 늘어졌다. 그의 두 손은 지혜의 비밀스런 곳을 더듬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지혜는 살그머니 한 손을 뻗어 백 속에서 권총을 끄집어냈다. 차가운 금속의 촉감이 그녀에게 살의를 돋구어 주었다.
“야, 정필대, 이 쓰레기만도 못한 놈!”
신지혜가 갑자기 소리를 치면서 정필대를 두 팔로 힘껏 떠밀어 냈다. 그리고 두 다리로 그를 걷어찼다.

“아, 아, 아니⋯
정필대가 신음처럼 외치며 뒤로 넘어질 듯 엉거주춤 기대 앉았다. 놀란 눈으로 신지혜를 쳐다  보았다.
“배신자! 나는 너를 살려둘 수 없어. 네가 나를 죽였듯이 나도 너를 죽일 거야.  어쩌면 사람을 그렇게 잔인하게 속일 수 있단 말인가?”

신지혜의 눈에서 매서운 살기를 느낀 정필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손으로 신지혜의 권총 구멍을 막으려고 했다.
“탕!”

그때였다. 신지혜는 정필대의 관자놀이를 쏘아 그를 쓰러뜨린 뒤 권총에서 지문을 닦아내고 그것을 그의 왼손에 쥐어 주었다. 신지혜는 핸드백에서 오랑우탄 손가락 가죽으로 만든 골무를 꺼냈다. 자기 지문을 지운 뒤 골무 끝 지문이 있는 부분에 침을 묻힌 뒤 몇 군데 지문 자국을 남겼다. 추 경감이 풀지 못한 의문의 AB형 지문을 남긴 것이다. 그녀는 재빨리 그 방을 나와 곽진에게로 돌아갔다. 곽진은 옷을 다 벗은 채 이미 샤워까지 끝내고 누워 있었다.

신지혜가 재빨리 옷을 벗어 큼직한 백 속에 집어놓고 머리에 썼던 가발을 벗어 함께 백 속에 감추었다. 화장 도구를 꺼내 얼굴 모습을 고친 뒤 옷을 벗었다. 그 모두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가발을 벗고 화장을 고치자 짧은 숏커트 머리에 까막 딱지가 잔뜩 앉은 모습이 전혀 딴 여자로 보였다.
지혜가 벌거벗은 곽진을 껴안았을 때 그는 긴장해서 근육이 굳어 있었고 피부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들이 어설픈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 강 형사가 나타났던 것이다. 지혜는 그때 곽진의 굳은 육체를 생각하며 빙긋이 웃었다.

“미혜야, 이제야 네 앞에 떳떳할 수 있구나.”
신지혜는 미혜의 밝고 티 없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비겁하게 허우적거리며 최후를 마치던 방태산의 얼굴도 떠올렸다.
“비겁한 사나이, 불쌍한 사나이⋯”

신지혜는 다시 혼자 중얼거리며 창 밖을 내다보았다. 하얀 구름이 솜털처럼 비행기 밑에 깔렸다.
그 희고 부드러운 구름 위에 추 경감의 천진스러운 웃음을 그려보았다.
“추 경감님, 미안해요. 어쩔 수 없었단 말이에요.”

[작가소개]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학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