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카지노

[연재-이상우의 정치 추리 소설-악녀시대] 31

2021-09-24     이상우 작가

“그렇다. 신지혜다. 신지혜하고 같이 다니는 남자, 그 뭐지?”
추 경감과 강 형사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그 녀석은 동물 전문 의사지. 그러니까 오랑우탄으로 지문 정도 만드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야. 동물학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짓이야.”

추 경감은 흥분해서 목소리까지 떨렸다. 반장이 그렇게 흥분한 것을 강 형사는 본 일이 없었다.
“그리고 또 있어. 빨리 가 보자.”
“어디로요?”

“어딘 어디야, 범인 잡으러 가는 것이지.”
두 사람은 뛰다시피 사무실을 나갔다. 강형사가 고물 프레스토를 바퀴에 불이 나도록 밟았다.
그들이 신지혜의 아파트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께였다.
급히 계단을 올라가며 강 형사가 물었다.

“그러나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많은데요?”
“그건 신지혜에게 물어봐.”
그들이 신지혜의 아파트에 도착해 초인종을 눌렀다. 긴장한 두 사람이 현관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강 형사가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나 아무 소식이 없었다. 이상한 예감이 든 추경감이 현관문을 밀어 보았다. 그냥 열렸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인기척이 없었다. 두 사람은 거실에 올라서면서 비로소 이사를 간 빈 집이란 것을 알았다. 여기저기 쓰레기 같은 것이 그냥 흩어져 있고 살림살이는 하나도 없었다.
원래 신지혜가 자취를 하며 임시로 있던 집이라 가구 같은 것은 별로 없었지만 이사 가고 난 뒷 모습은 더욱 황량했다.
“떠났구나!”

추경감이 낭패스런 얼굴이 되었다.
“우리가 한 발 늦었어요.”
방문과 부엌문을 열어 보며 강 형사가 따라 말했다.
“여기저기를 좀 잘 살펴봐. 무엇인가 남긴 것이 있을지도 몰라.”
추 경감은 침실로 쓰던 방을 세밀하게 살피면서 강 형사에게 말했다.
욕실을 살피고 있던 강 형사가 뛰어왔다.

“반장님, 이것 보십시오.”
그는 여자의 가발 하나를 들고 왔다. 머리카락이 생머리 모양을 하고 길게 늘어진 가발이었다.
“그것 어디서 났어?”
추 경감이 반갑게 말했다.

“욕실 쓰레기통에 있었습니다. 신지혜가 쓰던 것 아닐까요?”
“그게 틀림없이 혈액형 A형의 사람 머리털로 만든 것일 거
야. 방태산의 손에 쥐어 주었던 머리칼이 이걸 거야.”
추 경감이 가발을 만져보면서 말했다.

“신지혜가 처음 나를 만나러 왔을 때는 진짜 자기 머리였겠지. 그러다가 짧게 머리를 깎아버리고 이 가짜 머리를 쓰고 다녔다고 보아야 돼.”
“머리 털 가지고 머리깨나 썼군요.”
“다른 것도 없나 좀 찾아보게.”

추 경감은 다시 침실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침실에는 침대가 그냥 놓여 있었다. 그는 침대를 뒤집어 바닥을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머리맡에 놓인 서랍을 열어보았다.
“이것이다!”

추경감이 소리쳤다. 그는 골무처럼 생긴 것을 두 개 집어들었다. 새끼손가락 끝에 끼어보았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사람의 손마디처럼 생긴 가죽 골무였다. 끝에는 선명하게 지문 같은 것이 보였다.

“이것이야. 오랑우탕의 손가락, 아니 발가락 가죽으로 만든 지문 골무야. 괘씸한 사람들 같으니, 박사씩이나 해 가지고
겨우 머리를 쓴다는 게⋯”
“정말 놀라운 일이군요.”

강 형사도 신기한 듯 골무를 받아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말했다.
“자, 이것들을 증거물로 잘 보관해. 그리고 빨리 신지혜와 곽진을 찾아내야 해.”
“곽진은 며칠 전에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어제 제가 체크를 해 보았거든요.”
“뭐야?”

추 경감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신지혜도 출국한 것 아냐?”
추 경감이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두 사람은 아파트 경비실로 급히 달려갔다.
“그런데 반장님⋯”

“잔말 말고 빨리 따라와.”
추 경감이 계단을 뛰다시피 내려갔다.
“이봐요, 우리 경찰인데 말 좀 물어봅시다.”

추 경감이 늙수그레한 경비원에게 급히 물었다. 경비원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다가 틀림없다는 판단을 얻었는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요?”
“이 위에 신지혜라는 아가씨 있지요?”

추 경감이 물었다.
“예, 미국서 오신 박사님 말이죠?”
“그렇습니다. 그 아가씨 어디로 이사 갔나요?”
“중대한 범인입니다.”

강 형사가 덧붙였다. 경비원은 조금 놀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갔는데요.”
“가다니요? 어디를요?”
“미국 간다고 떠났는데요. 영 이사 간 겁니다. 조금 늦으셨어.”
요.”

“예?”
두 사람은 동시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언제요?”
“두어 시간 됐나요. 비행장에 간다던데요. 이 집 전세금을 갑자기 어제 빼더니⋯”
추 경감과 강 형사는 경비원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강 형사가 다시 프레스토의 액셀러레이터를 죽어라고 밟았다. 차가 올림픽도로로 올라섰다.
“김포 공항까지 얼마나 걸릴까?”

“지금 차가 별로 밀리지 않으니까 3, 4십분 걸릴 겁니다.”
“전화를 거는 게 어떨까?”
“이 차엔 무선전화 같은 건 없습니다. 지금 내려가서 공중전화 찾아다니고 어쩌고 하면 직접 가는 것보다 더 불확실합니다. 수배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몰라요.”
강 형사의 판단이 옳은 것 같았다.

[작가소개]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학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