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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이상우의 정치 추리 소설-악녀시대] 24

2021-08-06     이상우 작가

신지혜는 그런 여자와 맨정신으로는 더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패배감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마구 술을 마셔댔다.
오명자는 한 잔을 겨우 받아 마시고는 얼굴이 앵두처럼 빨갛게 되었다.
“전 술을 못해요.”

송희는 웃는 얼굴로 술잔을 사양한 뒤 사이다를 따로 시켜 마셨다.
신지혜는 그 모습을 보기가 조금은 괴로웠다.
“송여사는 돌아가신 부군 생각이 가끔 나시지 않으셔요?”
지혜가 약간 오른 취기를 이용해 송희의 아픈 곳을 찔러 보았다.
“어차피 헤어져야 하는 것이 사람의 운명 아니겠어요? 그이와는 다른 부부보다 조금 먼저 헤어졌을 뿐이지요.”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송여사는 짐작이 가지요? 범인이 여자일지도 모르잖아요?”
지혜가 약간 흐트러진 발음으로 약을 올리려고 했다.
“우리 그런 이야기는 그만두고 딴 얘기 해요. 여긴 식당이잖아요.”
송희의 모습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명자 씨. 당신이 좀 이야기해 보아요. 당신 여류 탐정질 잘하잖아!”
신지혜의 말은 이제 완전히 시비를 거는 투였다.
“내가 뭘⋯”

오명자는 신지혜의 시비에 걸려들지 않으려고 몸을 사렸다.
“당신 방태산 뒷조사하고 다녔잖아? 방태산, 천하의 색마, 죽을 때도 곱게 못 죽고 아랫도리를 드러내 놓은 채 죽었지. 그 놈은 우리 미혜의 원수⋯”
“미스 신, 왜 이래?”

보다 못한 곽진이 화를 냈다.
“흠, 동물 왕국의 왕자님, 동물의 세계에도 증오와 복수가 있나요?”
신지혜는 이제 완전히 취해 있었다.
“송희 씨, 당신은 승리자야. 위대한 승리자. 남편은 잃었어도 남편을 얻었지. 그리고 통쾌한 남편의 복수도 해치웠지.”

신지혜가 점점 대담해졌다.
“얘 명자야, 우리 그만 일어서자.”
참다 못한 송희가 자리에서 일어서고 말았다.
“실례합니다. 저희들 먼저 가겠어요. 신지혜 씨, 술 깨시거든 다시 만나요, 우리.”
송희는 약간의 미소까지 지으며 끝까지 침착하게 자리를 떠났다.
곽진은 너무 많이 마셔 흐늘거리는 신지혜를 렌트카에 싣고 호텔로 갔다.
“야, 꽉진!”

침대에 모로 쓰러져 있던 신지혜가 소리를 질렀다. 넥타이를 풀고 있던 곽진이 놀라서 돌아다보았다.
“야! 미스터 곽, 나 옷 좀 벗겨줘. 너, 여자 옷 벗기는 것 즐겁지?”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는 신지혜를 곽진은 어처구니가 없어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다가가 브라우스의 단추를 풀었다.

“스커트도 벗겨.”
신지혜가 눈을 지그시 감고 얼굴은 천장을 향한 채 사지를 곽진에게 내맡겼다.
곽진은 부지런히 지혜의 옷을 벗겨냈다.
지혜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은 채 명령만 하고 있었다.
곽진은 아무 소리도 않고 시키는 대로 했다.

술기운이 전신에 퍼졌는지 지혜의 온몸은 뜨겁게 달아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침대 위에 비스듬히 기대 누운 지혜는 다음 명령을 내렸다.
“야 곽진, 이리 와. 나를 가져.”

곽진은 그녀의 나신이 마치 고야의 ‘벗은 마야 부인’의 포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술이 취해 사지를 늘어뜨리고는 있었으나 하얀 시트 위에 누운 그녀의 자태는 명화를 무색하게 하는 고혹적인 모습이었다.
곽진은 아름답고 우아한 그녀의 나신을 보면서 성욕 같은 추한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아름다운 예술품을 볼 때 느끼는 것 같은 감동을 느끼기까지 했다.
“야! 곽진 뭐하는 거야? 빨리 덤벼들란 말야.”

지혜는 정말 평소에 하지 않던 거친 말을 마구 해댔다.
곽진이 다가가 조용히 지혜를 껴안았다.
지혜는 기다렸다는 듯이 곽진을 꼭 껴안았다.
“미스터 꽉!”
그녀는 약간 목멘 목소리로 불렀다.
“응?”

“나 죽고 싶어. 정말 나 죽고 싶단 말야.”
지혜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어깨를 들먹이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울음을 참기 위해 호기를 부리고 떠들다가 더 참지 못해 마침내 터뜨리고 만 것 같았다.

“난 뭣 때문에 사는지 모르겠어요.”
지혜는 뜨거운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었다. 곽진이 손으로 지혜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부드러운 손길로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다.
한참 울고 난 지혜는 곽진을 밀어내고 침대 담요로 몸을 가리면서 말했다.
“미안해요.”

그녀는 한참 있다가 다시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처음 서울에 올 때는 분노로 불타고 있었어요. 방태산, 정필대, 내 손으로 망하게 만들고 말 것이라고 맹세했었지요. 십 년이 걸리고 백 년이 걸려도 복수할 생각을 했지요. 하지만 이렇게 쉽게 그 꿈이 이루어질 줄은 몰랐어요. 두 사람의 원수는 없어졌어요. 그런데 왜 복수의 통쾌감이란 게 없지요? 누가 죽였든 그들은 죽었잖아요. 그런데 왜 시원하지 않는 거죠? 왜 이렇게 허무한 거죠? 난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요. 차라리 서울에 오지 말걸 그랬어요.”

“시간이 가면 감정이 정리될 거야. 너무 충격이 커서 그럴 거야. 조용한 시간이 필요해”
곽진이 침대 곁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 물면서 말했다.
“미스터 곽, 내일 가지요?”
“응, 뭣하면 지혜와 더 있을 수도 있어.”

“아녜요. 가세요. 나도 결심했어요. 서울에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다시 미국으로 가겠어요. 여기 일 마무리 지은 뒤 따라갈게요. 괜찮죠?”
곽진은 대답 대신 그의 입술을 지혜에게 포갰다.
“미안해요. 내가 너무 철이 없지요?”

신지혜는 그의 입술을 받아들이며 천천히 말했다.
곽진은 갑자기 그녀의 육체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왼손으로 그녀의 유방을 쥐었다. 따뜻한 온기다 손바닥을 통해 심장으로 전달되었다. 그는 입술을 천천히 옮겨 그녀의 유방을 가볍게 애무했다. 
“아이⋯ 간지러워요.”

신지혜는 두 손 바닥으로 곽진의 뺨을 감싸며 웃음 머금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꾸 이러면⋯”
“이러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신지혜가 곽진의 바지춤으로 손을 넣었다.  남성을 갑자기 움켜쥐었다.
“어머! 벌써”

그녀가 부풀어 오른 남성에 놀라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신지혜가 곽진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와이셔츠 단추를 풀고 벗겨 낸 뒤 바지 허리끈도 힘들이지 않고 풀었다.
곽진은 천천히 그녀를 끌어당겨 안았다. 알몸이 된 두 사람은 있는 힘을 다해 서로를 밀착시켰다.

침대 머리맡의 전등스위치를 끄며 곽진이 그녀 위로 올라갔다.
“잠깐.”
그녀가 곽진을 밀어내고는 벌떡 일어났다.
“왜?”

“오늘은 내가 맘대로 해야겠어”
이번에는 그녀가 곽진의 위에서 그의 가슴을 껴안았다. 지혜는 다시 격렬해지면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녀의 여성은 매끄러웠다. 곧이어 두 사람의 입에선 신음 같은 환희가 터져 나왔다.
 

[작가소개]

이상우;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학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