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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이상우의 정치 추리 소설-악녀시대] 21

2021-07-16     이상우 작가

“자, 당신은 큰 죄를 지은 게 없어요. 그러니까 사실대로만 이야기해 봐요. 당신이 그날 자하문장에 간 것은 차주호 위원장을 만나러 간 것이지? 출마하려는 차주호 말이야.”

강형사는 구형주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차주호는 아니고 미스 진이 거기 있다고 해서⋯”
마침내 구형주가 입을 열었다.
“미스 진? 진유선? 차주호 씨의 비서 말인가?”
“예.”

“남봉철이 진유선에게 돈을 전해 주라고 했나?”
“예.”
“얼마나 되었나?”
“8천만 원입니다. 순전히 알짜로.”
“알짜?”

“예, 현찰 말입니다.”
“그런데 진유선이나 차주호를 만나기도 전에 총소리가 나고 소동이 났단 말이지. 놀란 박철호가 뛰어와 형사가 와 있으니 빨리 도망치라고 했단 말이지?”
“잘 아시는군요.”

“남봉철은 왜 차주호에게 돈을 보냈나?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나?”
“여러 번일 것입니다. 내가 가져간 것은 처음이지만⋯”
“왜 남봉철은 차주호에게 돈을 보내나?”
“그야 형님에게 직접 물어보슈.”

“됐어요. 한 가지만 더 물어도 되겠어?”
“또 뭡니까?”
“정필대는 거기 무엇하러 갔나?”
“정필대? 거기서 죽었다는 정치인 말입니까?”
“그렇다네.”

“난 그런 사람 모릅니다.”
“누가 죽였는지 짐작 안 가?”
“하하하. 지금 누가 형사요?”
구형주가 크게 웃었다. 얼마나 크게 웃었던지 다른 일 하던 경찰관들이 모두 쳐다보았다.

“됐어요, 고마워요. 곰탕 한 그릇 시켜 줄까?”
“좋지요.”
강 형사는 곰탕 사식을 넣어주고 들뜬 기분으로 시경으로 돌아왔다.
“뭣 좀 알아냈나?”
추 경감이 석간신문을 뒤적이다가 물었다.
“굉장한 것을 알아냈습니다.”

“무슨 일인데?”
“정계의 흑막입니다.”
“아쭈, 허허허, 자네 뭐 잡지에 논픽션 쓸 일 있나?”
“그게 아닙니다. 픽션이 아닙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추경감이 웃으면서 보던 신문을 접었다.
“차주호 말입니다. 자민당의 제 13지구 공천 예정자, 여당의 실력자, 차주호 말입니다.”
“그래서?”
“그 차주호가 암흑가의 거물, 범죄조직의 보스 남봉철과 손을 잡고 있었다는 겁니다.”
“차주호와 남봉철이라, 정치와 마약이라⋯”

그러나 추 경감은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반장님, 정말입니다. 구형주가 그날 자하문장에 간 것은 차주호의 여비서 진유선에게 비밀자금 8천만 원을 전해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구형주가 자백을 했어요. 구형주는 남봉철의 심부름을 갔다가 뜻밖의 살인 사건이 나는 바람에 도망친 것입니다. 박철호의 충고를 받아들인 것이지요. 구형주는 견물생심. 돈을 보자 엉뚱한 욕심이 생겨 황금 살롱의 박정자를 끌고 달아난 것입니다.”

강 형사가 흥분해서 떠들었다.
“구형주가 정필대를 죽이고 달아났다고 볼 수는 없을까?”
“예? 구형주가 말입니까?”
“더 이상한 것은 정필대와 차주호라는 같은 선거구의 라이벌 정치인이 무엇 때문에 조그만 여관에 같은 시간에 들어 있었나 하는 거야. 이걸 좀 보게. 내가 방금 입수한 거야.”

추 경감이 복사한 서류 뭉치 하나를 강형사에게 던져 주었다.
“정보과의 보고서를 복사해 온 것이야. 잘 읽어 봐.”
강 형사가 서류를 뒤적여 보았다. 거기에는 마약 밀매조직 남봉철파와 여당 정치인 차주호의 추악한 뒷거래에 관한 조사 기록이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26. 지문의 수수께끼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친여적 입장에만 서 온 차주호도 보통 능수능란한 정치인은 아니었다. 오랜 세월 여당권에서 처신한 관계로 공무원 사회에도 아주 잘 통했고 요소요소에 자기 사람을 박아 놓고 있었다.

남봉철과는 30년 전부터 주종관계에 있다시피 했다.
그가 처음 정계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남봉철은 어느 실력 있는 정객의 보디가드 역활을 잠시 하고 있었다. 그 정객의 비서일을 하던 차주호는 자연히 그와 가까워지고 서로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관계를 형성했었다.

남봉철은 그 정객이 은퇴한 뒤 다시 자기의 본업인 주먹 세계로 돌아가고 새로운 후견자로 차주호를 업게 되었다.
남봉철은 자기 조직을 굳히고 그의 특기인 마약 밀매로 상당한 돈을 끌어모았다.
남봉철이나 그의 부하들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는 차주호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바람막이 노릇을 했다. 그 대신 상당한 액수의 정치자금을 남봉철이 마련해 주었다.

정계에서는 돈이 곧 파워다. 차주호는 풍성한 자금의 뒷받침을 얻어 자기 영토를 넓혀 나갔다.
남봉철의 사업도 의외로 잘되어 서로는 즐거운 합창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야합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러니까 평소에도 별로 남의 눈에 뜨이지 않는 자하문장 같은 조그만 장급 여관에서 서로 돈을 주고받았단 말씀이죠? 그날도 남봉철의 심부름으로 구형주가 돈을 전하러 갔다가⋯ 그런데 말입니다. 구형주는 분명히 차주호의 여비서인 진유선에게 돈을 전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차주호가 그곳에 가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혼자 추리를 해 나가던 강형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중 변체형은, 앞에 예시한 세 가지와는 전혀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지문이 선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가끔 있고 지문 형성의 삼각점, 즉 델타가 여러 개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문의 혈액형 감식은 지문 자체로는 알 수 없고 지문에 묻어 있는 분비물, 엄밀히 말해 땀이나 침 같은 성분을 분석해서 알아낸다고 한다.
“이 특이한 AB형 지문은 딴 것으로 분류할 수 없어서 변형이라고 하지 실은 변형 중의 변형이라는 것이 감식과 이경위의 설명입니다.”

“그 숙제를 좀더 풀어 보게. 지문 주인이 누군지 말야. 안 되면 과학수사연구소에 가서 알아봐.”
“거기선 지문 감식을 하지 않는데요.”
추 경감이 몰라서 한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문가는 있을 것 아냐?”

추 경감이 짜증을 냈다. 한참 천장을 보고 있던 그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가자.”
그는 신들린 사람처럼 외쳤다.
“예? 어딜 갑니까?”
강 형사가 놀라 눈이 둥그레졌다.

“차주호 사무실로. 제3선거구의 유력한 용의자가 차례로 피살된다? 그렇다면 다음 차례는 누구냐?”
“그야⋯ 그거 그렇군요.”
강 형사가 뛰어나가 고물 프레스토를 끌고 나왔다.
두 사람은 차주호 자민당 위원장 사무실로 달렸다. 차가 자하문 고개 근방에 이르렀을 때였다.

“차 세워!”
추경감이 길가의 무엇을 보았는지 명령했다.
강 형사가 차를 세우자 추경감은 아무 말도 않고 차에서 내려 길 옆에 있는 포장마차 같은 곳으로 걸어갔다. 자세히 보니 포장마차가 아니고, 어린이들 상대로 만두며 떡볶이 등을 파는 노점상이었다.

추 경감이 노점 안을 들여다보더니 손짓으로 강 형사를 불렀다.
강 형사는 추 경감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고는 빙긋이 웃으며 걸어갔다.
“자네 천 원짜리 있지?”
“참 반장님도, 지금 우리가⋯”
“알았어. 내가 자하문장 사건으로 이곳을 드나들며 얼마나 먹고 싶어했는지 몰라. 오늘은 큰 마음 먹었지.”

추 경감은 아주머니가 집어주는 떡볶이를 젓가락에 꽂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흉악한 범인을 쫓아 다니며 목숨을 거는 노형사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순진무구한 모습이었다. 강 형사는 어이가 없어 하면서 돈을 치렀다.
이럴 때는 어린아이인지 수사반장인지 분간이 안 갔다.
추 경감은 어릴 때 어머니가 해 주던 떡볶이의 맛을 잊을 수 없다고 늘 말했다.
“차주호가 진유선을 데리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수수한 여관으로 왜 대낮에 갔느냐, 그거 말인가?”

“예.”
추경감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임도 보고 뽕도 딴다는 말이 있지.”
강 형사는 그제야 눈치를 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젊은 여비서 진유선과⋯ 어쩐지 그 아가씨의 큼직한 눈, 긴 목덜미 등에 요염한 요부티가 났어요. 그러니까 젊은 여비서와 재미도 보고 그녀를 시켜 돈도 수금하고⋯”
추 경감은 책상 서랍에서 다시 복사된 서류 하나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이거 차주호의 아내가 간통으로 남편을 제소하고 아울러 이혼 소송 및 위자료 청구 소송을 낸 기록의 사본이야.”
“예? 차주호 아내가 간통으로 남편을⋯? 그렇다면 어째서 신문에도 안 나고 소문도 나지 않았습니까? 지금 재판이 진행 중인가요?”

“차주호의 수완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돼. 자기가 간통죄로 피소되고 이혼 소송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그 사실을 보안조치했으니까 말이야. 강형사도 알다시피 신문, 방송 기자들 입 막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니, 어려운 일이 아니라 우리한테는 불가능한 일이지. 그런데 차주호는 그 일을 해냈으니까. 매스컴에서는 감쪽같이 몰랐지.”
 

이상우;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학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