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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 광주 ‘철거 건물 붕괴’ 사고…왜 5층 건물 혼자 서있었나

보상 문제 등 복잡한 관계 얽혀 마지막까지 덩그러니 동구 지역 재개발 세밀한 계획 없이 되는대로 철거

2021-06-15     이창환 기자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사고현장을 찾았다. 누군가 사고 현장에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라고 적힌 화환을 뒀다.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철거 작업 진행 중 시내버스 위로 5층 건물이 무너져 내리면서 17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재개발 사고 현장을 찾았다. 현장은 여전히 건물 잔해를 철거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동구청 관계자와 지역 주민들로부터 마지막까지 남아있다 붕괴 사고를 낸 건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 13일 일요서울 취재진은 학동 재개발 철거 사고 현장에 구성된 ‘동구재난사고수습대책본부(재대본)’를 방문했다. 인근 주민센터와 경찰 등의 협력을 받아 광주광역시 동구청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재대본 관계자는 “(건물 붕괴 사고 관련) 이 곳에서 재개발 계획을 진행하면서 철거 마무리 단계에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게 됐다”며 “재개발 관련해서 HDC현대산업개발이 총괄하지만 철거는 다른 업체와 계약해 진행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 철거 문제가 좀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직선거리로 약 370m에 이르는 구간이 대부분 철거가 마무리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철거 상황은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으나 이번에 붕괴된 5층 병원 건물만 남아 이를 철거하는 마무리 단계에서 무너져 내린 것. 

사고 현장에 폴리스 라인이 쳐져있고 건물 잔해들이 주민들의 안전한 통행을 위협하고 있다. [이창환 기자]

5층 병원 건물 ‘왜’ 홀로 방치?

인근 지역 주민들은 재개발 철거 현장 끝부분에 건물 한 채가 덩그러니 남아 인도와 버스 정류장 등을 위협하고 있는 모습에 민원도 제기하고 광주광역시청과 동구청 등으로 항의도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동구 지역 거주자 A씨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나다니는 사람들마다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건물을 향해 ‘저러다 무너진다, 무너진다’고 수십 차례 경고해왔다”며 “철거 현장에 천막으로 가리개만 씌워둔 채로 주민들이 그 옆으로 지나다니는 모습마저 너무 아찔했다”고 회상했다.

또 다른 주민 B씨는 “해당 건물이 무너질까 무서워서 시민들은 민원도 수차례 제기했다”며 “시청도, 구청도 무슨 이유에선지 주민들 민원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버티다가 결국 안타까운 인명 사고를 냈다”고 속상함을 드러냈다.  

재개발 예정지의 건물들이 동시에 철거를 진행했다면 사고 발생을 미리 막을 수 있었을까. 해당 지역의 대부분 건물들이 해체되거나 철거가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고 건물은 홀로 남아있었던 걸까.   

재대본 관계자는 “주변 건물들 가운데 아직도 철거에 들어가지 못했던 곳은 보상 문제가 남아있었다. (재개발 현장은) 여러 가지가 복잡한 지역이다”라며 “한 건물이 (여러 주인으로) 자잘하게 쪼개져 있는데다 보상을 포함한 요구사항이 많고 각각 요구 조건이 달라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재개발은 결정이 났으나, 해당 철거지역의 일부 주민 가운데는 갈 곳이 없거나 보상 조건을 두고 오랫동안 해당 관청과 갈등을 빚어왔던 것이라는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현재 광주광역시에는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 다수다. 해당 지역만 하더라도 직선거리 총 500m에 이르는 구간에 걸쳐 재개발이 예정돼 있다. 현재 370m 구간이 철거를 마무리하고 있으나, 그 앞쪽으로 향후 철거가 예정된 주유소(현재 운영중)와 전자제품 판매점(운영중) 및 중형 슈퍼마켓(철수) 부지까지 130m 구간이 남아있다. 

직선거리로 370m 구간에 이르는 재개발 철거지역 앞쪽으로, 전자제품 매장과 중형 슈퍼마켓 부지 및 주유소 등이 현재도 위치하고 있다. 보상 및 철거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이창환 기자]

동구청 & HDC, 재개발 앞둔 탁상 행정 

동구청에 따르면 현재 재개발 예정지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는 남과주역 인근에서 2017년 HDC현대산업개발이 1410세대 대단지 아이파크아파트를 준공하면서 주변의 반응이 좋았다. 앞서 분양도 흥행에 성공했고, 이른바 프리미엄도 나쁘지 않았다. 이에 최근 사고가 발생한 학동증심사입구역 인근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계획하며 재개발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경찰이 재개발 및 철거 과정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면서 HDC현대산업개발 관계자, 철거업체 관계자, 감리회사 대표 등 총 7명을 업무상 과실 치사상 등 혐의로 입건했다. 불법하도급과 계획서 미이행이 밝혀지고 있으며 조폭 연루설까지 나오고 있다. 

매일 사고지역 도로로 출퇴근한다는 C씨는 “안전을 뒤로한 채 무분별한 재개발에 집중한 탁상행정에서 비롯된 인재다”라며 “HDC측이든 동구청 직원이든 현장 감독 한 명만 제대로 있었어도 위태로운 건물 상황을 몰랐을 리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앞서 보상 문제와 철거계획을 좀 더 세밀하게 세우고 준비했더라면 안타까운 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질책했다.

동구청 측은 “과거 동구도 발달한 곳이었으나, 주변으로 도심이 확장되면서 인구가 많이 빠져나갔고, 재개발이 진행되지 못했다”며 “이에 재개발 계획을 세우고 여러 곳에서 동시에 개발이 진행되는 중에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한편 해당 건물 붕괴 사고로 17명이 탑승하고 있던 시내버스가 건물 더미에 깔리면서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경상을 입어 치료 중이다. 

뒤로 건물 붕괴 사고 현장이 보이는 인도에서 경찰들이 주민의 통행을 통제하고 있다. [이창환 기자]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사고현장에 재난사고수습대책본부가 꾸려졌다. [이창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