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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이상우의 정치 추리 소설-악녀시대] 13

2021-05-21     온라인뉴스팀

“그 작자 무식하기 짝이 없고 인물도 별로 볼품 없거든요.”
“그래서?”
“그런데 여자 꼬시는 솜씨 하나는 기가 막히다고 합니다. 제아무리 정절 깊은 춘향이라도 방태산이 찍으면 드러눕지 않고 못 견딘다고 하거든요.”
“드러 누워?”

“드러 누워야 일이 될 것 아닙니까? 여자 세워 놓고 오입하는 것 보았습니까?”
“싱겁기는. 쯧쯧쯧..”
추 경감이 다시 혀를 찼다.

“장학금 대 준다는 핑계로 어린 여학생에게 손을 대지 않나, 선거 운동원으로 쓴다고 모아 놓은 유부녀를 여관으로 데리고 들어가지를 않나, 술집 아가씨 들은 아예 시시해서 건드리지도 않는대요.”
강 형사가 혼자 계속 떠들었다.
 
16. 추악한 정치꾼들

강 형사가 민주보수당 서울 제 13 지구당 위원장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방태산은 자리에 없었다.

꽤 넓은 사무실에는 방금 전쟁을 치른 듯이 각종 팸플릿이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여기저기 라면 상자가 쌓여 있고 구석에는 냄비며 먹고 난 우동 그릇 등이 지저분하게 놓여 있었다.
 “어디서 오셨지요?”

키가 크고 목이 두꺼운 젊은이가 두리번거리는 강 형사를 보고 물었다.
 “전 경찰관입니다만......”
강 형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야당 사무실에서 말 실수 했다가는 큰 곤욕을 치른다는 것을 정보과 동료들로부터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 그렇습니까? 누추하지만 좀 앉으십시요. 전 여기 총무를 맡고 있는 방이라고 합니다.”

그는 상냥스럽게 강 형사에게 의자를 권했다.
 “미스 권, 여기 차 좀 가져오지.”
방 총무가 사무실 구석 의자에 앉아 잡담하고 있는 두 여자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미스 권이라는 사무실 여 사무원과 일을 마치고 돌아온 오명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방 총무의 주문에 발딱 일어선 것은 미스 권이 아니라 오명자였다.

오명자는 계단께로 나가 자판기에서 종이컵 커피 두 잔을 뽑아다가 방 총무와 강 형사 앞에 놓았다.
키가 조금 작기는 했으나 풍성한 가슴과 히프가 육감적인 오명자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금방 요염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우아한 여성미와는 거리가 멀지만 남자들의 천한 욕심을 자극시키는 그런 특별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오명자는 탁자 위에 커피를 내려놓으며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아 옆으로 무릎을 굽혔다. 컵을 놓는 손이 얼굴에 비해 거칠지만 희고 통통하다고 강 형사는 생각했다.

  ‘고맙습니다.      ’
강 형사가 점잖게 인사를 했다. 오명자는 그냥 강 형사를 쳐다보며 약간 웃어 보였다. 동그란 얼굴에 약간 주근깨가 퍼져 있었다. 햇볕에 탄 건강한 모습이 미인은 아니지만 귀염성이 있어 보였다.
 “그래, 어느 서에 계신......”

 “예, 전 시경에 있습니다만...... 방 위원장님은 지금 안 계신지요?”
강 형사는 연신 절을 하다시피 하는 저자세로 방 총무에게 물었다.
 “예, 곧 들어오실 겁니다. 급한 일이시면 저한테 말씀하십시요. 전 위원장님의 재종 동생입니다.”

그는 동생이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예, 그렇습니까? 뭐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만...... 그냥, 요즘 공기가 어떤가 하고.”
강 형사는 금방 무엇이라는 핑계를 대지 못하고 어물거렸다.

 “예, 알겠습니다. 차나 한 잔 드시고 가시지요. 형님이 안 계셔서 도움을 드리기는 어렵고......”
방 총무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다. 도움을 드리기 어렵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처음에 강 형사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금일봉을 뜻한다는 것을 그는 곧 알아차렸다.강 형사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마시고 있던 종이컵을 방 총무의 얼굴에 내동댕이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꾹 참았다.

 “제가 온 것은......”
강 형사가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꺼낼 때였다.
 “앗따 방 좀 치아라. 이기 뭐꼬. 순 돼지우리 아이가......”
걸쭉한 목소리로 떠들면서 방태산이 들어왔다.
 “저 형님, 손님이......”

 “인마야 또 형님이가?”
 “저 참 위원장님.”
 “그래 뭐꼬, 방 총무?”
방태산이 강 형사를 흘깃 보면서 말했다. 부리부리한 눈에 두툼한 입술이 정열적으로 보였다. 훤칠한 키와 떡 벌어진 어깨, 널찍한 이마 등이 사나이답게 생겼다고 강 형사는 생각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방 총무는 방태산과 함께 위원장실이라고 쓴 곳의 도어를 열고 들어갔다. 허술한 칸막이를 해놓아 안에서 하는 말이 모두 들렸다. 아니, 들렸다기보다는 강형사가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았다.

 “시경에서 지나다가 들렀다는데요, 별 볼일은 없고, 뭐 뻔한 것 같은데요.”
방 총무의 말소리였다.
 “알았다. 작은 봉투 줘 보내라.”
 “형님이 직접......”

 “알았다.......”
강 형사는 더 참을 수 없는 수모였지만 다시 꾹 참았다.
 “저어, 위원장님 방으로 들어가시지요.”
조금 있다가 방 총무가 강 형사를 안내했다.

 “저 강이라고 합니다. 시경에 있습니다.”
강 형사는 온갖 굴욕을 참는다는 기분으로 공손하게 절을 했다.
 “아, 강 형사, 배 국장 잘 있능교? 그리 앉으이소.”
방태산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배 국장이라구요?”

강 형사가 어리둥절했다.
 “아, 시경국장 말입니더. 내 잘 알지요. 가거든 이 방태산이 가 안부 전한다고 카이소.”

방태산은 싱글싱글 웃으며 거드름을 피웠다. 이런 작자면 충분히 살인 음모 같은 것도 꾸밀 수 있을 것이란 육감이 강 형사의 머리를 스쳤다.
 “아 예, 우리 국장님하고 친분이 두터우시군요. 저 같은 쫄따구야 국장님을 뵈올 수나 있습니까? 헤헤헤.”
강 형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래, 나한테 특별히 볼일이라도 있는교? 참 맥주 한잔 할랑기요?”
방태산은 벌떡 일어나 옆에 있는 조그만 냉장고를 열고 캔 맥주 두 개를 들고 왔다. 그는 캔을 픽 소리를 내며 딴 뒤 벌컥벌컥 들이켰다.
“커어, 아 시원하다. 하나 드이소.”

 “전 근무 중이라 술은......”
 “앗따 이기 뭐 알콜인교 음료수지. 자, 드이소.”
강 형사는 마지못해 캔을 받아 탁자 위에 그냥 놓았다.
 “그래, 무신 일인교?”
 “그냥 지나다 들렀습니다. 인사도 여쭐 겸......”

 “하하하, 알겠심더. 오신 손님인께 빈손으로 보낼 수야 없지요. 하하하.”
강 형사는 비위가 발칵 상했으나 참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저 몇 가지만 여쭐 말씀이 있어서......”
 “어려버 말고 말하이소.”

 “혹시 신지혜라는 여자를 아시는지요?”
 “신지혜?”
 “예, 강원도 속초가 원래 고향이고 미국서 박사학위를 받고 요즘 돌아온 30대 초반의......”
 “신지혠지 구두지혠지 그런 아이 난 모르오.”
 “그 동생이 신미혜라고......”
 “신미혜?”

방태산의 움칫 놀라는 표정을 강 형사는 놓치지 않았다.
 “당신 난데없이 그거 무신 홍두깬기요? 내가 뭐 그런 여자애들하고 뭐꼬, 스캔들 만들었다고 소문 낼라카나? 누가 시킨 짓인교?”

방태산의 태도가 돌변했다. 강 형사는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위원장님, 그 무슨 당치 않은 말씀입니까? 그냥 농담으로 받아주십이오. 걔들은 이 근방 술집 애들입니다. 위원장님이 워낙 인기가 있으니까 그런 애들이 사죽을 못 쓰고 선전합니다.”

 “흠, 그래요? 내 속아 주지.”
방태산의 태도가 다시 좀 누그러졌다.
 “저어, 정필대와 차주호에 대해서 들으신 것 없으십니까? 뭐 언제 만났다든지...... ”

강 형사가 다시 방태산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죽은 사람은 와 들먹이노? 지 싫다고 이 세상 버린 사람.....”
 “자살이 아닌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요? 나도 그 점이 좀 수상타 생각 안하는교. 경찰에서도 그리 보는 모양이재?”

 “타살이라면 혹시 배후에 정치색과 관련이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재?”
방태산의 눈이 반짝였다.
 “반드시 뭐가 있을끼라. 이 13선거구에서 라이벌 제거시킬 힘 있는 사람은 누구겠는교? 거 가서 알아보이소.”

 “차주호 씨 말인가요?”
 “내사 마 꼭 차주호 자민당 위원장이라고 내 입으로 말한 거 아이구마.”
 “두 사람이 자주 만난다거나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아이 경찰이 여당 후보 동정도 그렇게 모르는교? 두 사람은 자하문장인가 뭔가에서 여러 차례 만나는 걸 본 사람이 있구마.”

 “예? 무엇 때문입니까?”
 “그야 내가 우찌 아는교. 하지만 뻔한 거 아이겠능교. 힘 있는 사람이 힘 없는 사람 양보시킬라고 한 거 아니겠는교? 안 되면 완력도 쓸끼고......”
 “누가 힘 있는 사람입니까?”

 “앗따 이 사람, 이거 참말로 형사가? 와 그리 눈치도 없노? 여당 사무실 주변에 가서 좀 알아보소. 요새 거기서 실탄 펑펑 쏜다카이.”
 “실탄?”
 “이거 말이다 이거.”
방태산이 답답하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아, 예......”

강 형사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일어섰다.
 “자, 이거 찻값 하이소.”
방태산이 책상 서랍에서 조그만 봉투 하나를 꺼내 재빨리 강 형사의 점퍼 호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 솜씨가 텍사스의 총잡이들만큼이나 빨라 강 형사가 거절할 틈도 없었다.
 “아니......”

 “총무, 손님 가신다.”
곧이어 방 총무가 들어와 밀다시피 하는 바람에 강 형사는 엉 거주춤 밖으로 나왔다.
 “안녕히 가십시요.”
방 총무의 인사를 등 뒤로 받으며 강 형사는 계단을 내려왔다. 호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만지작거릴 때였다.

 “안녕하세유?”
조금 전 사무실에서 커피를 가져다 주던 오명자가 계단을 올라오며 인사를 했다.
 “아가씨, 이것 좀 받아요. 방태산 씨한테 도로 주든지 아니면 아가씨가 쓰든지 맘대로 해요.”
강 형사가 봉투를 오명자에게 내밀었다.

 “난 아가씨 아닌데......”
오명자가 방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미안해요. 나하고 차 한잔 할까요?”
강 형사가 헛일 삼아 던져본 말이었다.

 “좋아요. 저 여관 지하에 다방이 있어요. 제가 곧 갈 테니 가서 기다리시겠어요?”
뜻밖의 반응에 강 형사는 마음속으로 쾌재의 노래를 불렀다.
두 사람은 조금 뒤 좁고 음침한 다방에 마주 앉았다.

 “전 오명자라고 해요. 보수당 사무실에 있는 선거 운동원이에요. 일당 받고 다녀요. 남편은 직업 없이 평생 놀기만 하고요.”
 오명자는 묻지 않는 말까지 늘어놓았다.

 “선생님은 정필대씨의 죽음에 대해 조사하고 계시지요? 제가 얘기하시는 걸 엿들었어요.
 아니, 저어......“
강 형사가 당황할 정도로 오명자는 이야기를 술술 풀어나갔다.
 “제가 보기에도 방태산 씨는 수상한 점이 많아요. 늘 최대의 적은 차주호가 아니라 햇병아리 정필대라고 했거든요. 그 놈만 교통사고로 뒈지든지 식중독으로 죽든지 하면 쉽게 풀릴텐데 라고 늘 말했거든요.”

 “그야 화가 나면 하는 소리겠지요. 실제로 죽이겠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사람 죽이는 것 못 보았습니다.”
강 형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게 아니에요. 방태산 위원장님 같은 사람은 능히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공무원이나 기업하는 사람 약점 잡아  가지고 돈 알겨 먹는데 귀신이거든요.”
 “그런데 오명자 씨는 방태산 씨를 그렇게 싫어하면서 왜 선거 운동을 해 주고 있습니까?”

 “할 수 없이 그러고 있는 거죠. 저도 공무원이나 기업주처럼 오금을 잡혔거든요.”
오명자가 갑자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오금을 잡혀요?”

 “방태산이 천하에 둘도 없는 오입쟁이란 것 모르셔요?”
강 형사는 그 말에 금방 눈치를 챘다.
 “저, 사무실에 오명자 씨 같은 여자가 많나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모두 당했다고 보아야지요. 저 엉터리도 누군가의 손에 숨을 거둘 거예요.”

강 형사는 착하게 보이는 오명자의 얼굴에서 번개처럼 스치는 표독함을 언뜻 보았다.

[작가소개]

이상우;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학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